문화는 덤
이제 며칠만 있으면 서울에서 강원도 홍천으로 이사온지 만 2년이 된다.
홍천으로 이사와서 좋았던 점은 많이 있지만 그중 하나가 사방이 고요하다는 것이다. 참 고요하다. 그야말로 고요하다. 고요하다보니 서울에 있을 때 제법 시끄러웠던 내 내면도 덩달아 고요해졌다. 그리고 아침저녁 한나절의 고요를 사랑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즐기게까지 되었다.
그리고 또 좋은 점은 자연이 항상 떡하니 내 앞에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과 함께 하기 위해서 차타고 나갈 필요가 없다. 주말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항상 자연이 내 눈앞에 펼쳐저 있다. 자연과 함께 하려면 눈만 뜨면 된다. 아니 눈감고도 함께 할 수 있다. 자연의 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이만한 호사가 없다.
특히 내가 사는 강원도 이 지역은 산이 많아서 산이 아주 가깝게 있다. 동네가 이루어져 있고 저멀리 산이 둘여처져있는 여타 전원지와 달리 산이 바로 코앞에 있다. 어쩌면 산 속에 동네가 형성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온통 사면이 이런 산 저런 산으로 둘러처져 있다. 동네가 산 하나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산들이 동네를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그것도 제법 가까이. 그러니 눈만 뜨면 아름답기도 하고 수려하기도 한 산들을 볼 수 있고 산과 대화할 수 있다.
강원도에 처음 들어왔을 때 산이 내게 가만히 말을 걸어왔다.
경쟁적인 도시생활에 지친 나에게, 나의 패러다임에 갇혀서 허덕이는 나에게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고 자기처럼 그저 존재하면 된다고 넌지시 알려주었다. 얼마나 위로가 되든지...내가 악착같이 붙들고자 했던 것들 그것을 붙들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었던 것들을 놓아버려도 삶은 끄덕없다는 것을 그때 알고 가히 충격적이었다. 원치 않지만 주어진 삶이니 어떻게든 살아야 된다고 믿었던 그 삶을 살지 않아도 되고 내가 살고싶은 삶을 살아도 된다고 속삭여주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용기를 내서 원치않는 삶을 버리고 살고싶은 삶을 선택했다. 그래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산다. 즉 내가 하고싶은 대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하며 살고 있다. 그렇게 살아도 삶이 나머지는 다 알아서 살아주는 것을 알았다. 지금 나는 그저 자연처럼 살고 사랑하는 이와 순간을 누리고 소박하고 단순하고 가볍게 살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 충실히 잘 하고 있다. 내가 서울에서 내게 주어진 내 삶이라고 생각하여 힘겨워하면서도 살아내려고 애썼던 그 삶은 가볍게 털어버렸지만. 이제 외부에서 주어진 삶이 아니라 내부에서 내가 선택한 삶을 살고 있다. 내가 살고 싶은 삶, 살고자 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해서. 내가 주체가 되어서.
이렇게 사니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은 나라는 것을 확실하게 실감한다. 그 무엇도 내 삶의 주인노룻을 할 수 없다. 관습이나 세상이 좋다고 하는 많은 가치는 물론 어떤 이데로올기나 철학이나 사상도 받들지 않는다. 그것이 아름답고 온전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모든 것 위에 내가 있다. 그것의 종노릇하지 않는다. 내가 그 모든 것의 주인이다.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주인이 되지 않는다. 아무 것도 섬기지 않는다.
아무 것도 섬기지 않는다는 의미는 나 밖의 것(관습이나 세상의 가치들)을 지키기 위해서 나를 희생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나를 우선적으로 소중히 하며 자연의 일부로서 나를 그대로 놓아두고 물흐르듯이 산다. 자연인으로서 자연과 더불어 자연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화에 대한 욕구가 없을 수는 없다. 문화에 대한 욕구는 음악을 늘 일상에 흐르게 하고 넷플릭스를 통해 자주 영화를 봄으로써 채운다. (넷플릭스는 전원생활에 필요한 신의 한 수이다.) 그리고 업인 강의를 위해 가까이 (내가 사는 곳은 강원도 서면 쪽에 있어 서울 잠실에서 한시간거리이다.) 있는 서울에 나가는 거외에 별 일이 없어도 잠실에 나간다. 나가서 서점도 들리고, 쇼핑도 하고 사람구경(?), 건물구경(?)도 하고 석촌 호수도 걷고 스타벅스에서 까페 라떼도 한잔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다 들어온다.
서울나들이를 하고 돌아오면 자연이 또 새롭게 다정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이렇게 나는 자연처럼 살아가고 있다. 단순하고 소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