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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우주와의 소통언어

범사에 감사하라!

  성경에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 왜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가?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가? 범사란 모든 일이 아닌가. 하는 것들이었다. 그렇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게 말이 되는가?  모든 일에 감사하라니...참 말이 안되는 말이다. 감사할 게 있고 그렇지 않은게 있지 어떻게 모든 일마다 다 감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상하게 대체로 나이든 사람들이 감사를 잘 한다. 나의 편견인지는 모르겠다. 대체로 나이를 잘 먹은 나이든 사람들이 감사를 잘 한다. 감사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도 본다. 정말 범사에 감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긴세월 살아보니 삶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작고 소박한 것에도 감사하게 되는 것일까? 


  요즘은 감사일기도 많이들 쓰고 있다. 감사일기를 쓰면 감사할 꺼리가 많이 생긴다고도 한다. 그런 사실을 암암리에 깨달아서 그렇게 열심히 감사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감사를 하면 그 즉시 행복해진다.  불평하면 그 즉시 불행감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감사하는 것임을 아는 사람은 안다.


  봄 가을 환절기만 되면 알레르기 비염으로 몸이 다운되고 아프다. 체력이 뚝 떨어져 일상생활하는 것조차 힘겹다. 비염이 지나가기 까지 견디는 수 밖에 다른 처방도 없다. 그나마 코에 뿌리는 일러지성 비염치료제를 사용하고 조금은 견디기가 쉬워졌지만 전체적으로 몇달간은 힘들다. 몸이 힘드니 자연히 짜증도 나고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기가 쉽다. 그러면 몸은 더 아파진다.  이아프다는 것이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멀쩡하다. 그러나 나는 늘 몸컨디션이 최악인 상태다. 특별히 드러누워 끙끙 앓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없어 타인은 아픈 지도 모른다. 마치 여성들이 생리통을 하는 것과 유사하다.  생리통은 며칠이면 끝나지만 알레르기 비염은 몇달간 지속된다. 그러다 계절이 지나가면 뚝하고 끊어진다. 신기한 증상이다. 거짓말 같다.


  어쨋든 이런 비염을 십수년간 끼고 살다보니 이 비염가운데서도 즐겁게 사는 방법을 터득했다. 감사하는 것이다. 불평하고 비난하고 짜증내는 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꾸니 몸에 그 감사의 기운이 쏙쏙 스며들면서 찌뿌드하던 기분나쁜 통증이 스르륵 소멸되는 것을 어느순간 감지했다. 그야말로 비법을 터득한 것이다. 그래서 무어 특별한 일이 없어도 모든 것이 감사하다고 생각하기로 작정했다. 그렇게 작정하니 또 감사한 마음이 진실되게 올라왔다. 그러면서 몸도 편안해졌다. 찌부듯한 기분나쁜 통증이 사라진다. 참 신기한 일이다.


  아!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한 것이구나. 감사해서 감사하는 것도 있겠지만 감사하면 몸도 편안하고 삶도 좋아지기 때문에 감사하라고 말한 거였구나. 삶의 지혜를 말한거였구나.


  지인들 중에는 감사일기를 쓰는 사람이 참 많다. 하루에 다섯가지 정도의 감사제목을 찾아보는 것이다. 나도 매일 저녁 하루일과를 마치고 감사일기를 쓴다. 어렵게 하지 않는다. 그저 핸드폰을 들고 '나에게 보내는 카톡'에다 그날의 감사한 일을 간단하게 적는다. 예를 들면 오늘이라는 선물에 감사. 소박하고 맛있는 저녁식사를 만들어 먹은거 감사. 하는 식이다. 열두가지 정도 적는다. 처음에 다섯가지를 적다가 열두가지로 늘렸다. 감사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감사일기를 쓰면서 삶의 질이 훌쩍 더 올라간 것은 확실하다. 감사를 본격적으로 강의하는 전문 감사강사들이 말하는 감사의 기적은 많다. 평생 지지고 볶던 사이가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로 바꿨다든지 감사를 하고나서부터 삶이 달라졌다든지...오프라 윈프리도 감사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왜 감사가 이렇게 파워가 있는 것일까? 

감사는 우주와의 소통언어이기 때문이다. 감사는 우주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언어이다. 우주가 알아듣는 유일한 사랑의 언어인 것이다. 우주는 감사하다는 말을 들어야 우리와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그래서 이 감사를 통해 나의 소망을 전달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내 삶이 어떻게 되길 원하는지 등등을. 우주는 자신이 알아듣는 이 감사의 언어를 통해 전달된 소망을 듣고 움직이는 것이다.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그러니 감사가 얼마나 파워풀한가!


  한때 삶이 밑바닥에서 헤매던 시절이 있었다. 마음은 결핍감으로 가득 차고 소외감과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분노가 마음을 자리하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래서 알레르기 비염이 더 극심했던 것 같다. 불평했던 만큼 몸은 불쾌한 통증으로 괴로웠던 것이다. 삶이 너무 힘들어서 어느순간 감사를 노래부르기 시작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살아남아야 했으므로.


  우주와 소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주에게 나의 소망을 전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차츰 차츰 삶은 개선되었고 원하는 삶이 펼쳐지면서 어느순간 원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마음에 결핍감대신 충만감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사랑과 풍요와 건강이 주어졌다. 마치 계절이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것처럼 천천히 그리고 순식간에 바뀌어버렸다.


  이제 '감사합니다!' 라는 언어는 나의 하루를 살아내는 꼭 필요한 비타민이 되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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