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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투비긴 Nov 25. 2021

[에세이.소설] 연애할때 나쁜놈은 결혼해도 나쁜놈

갑과 을은 연애때부터 시작했다.

2009년 여름. 오늘부터 1일이라며 여친, 남친이 되기로 한 그날. 같은 회사를 다니면서 비밀연애가 시작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연애세포가 피어나려는데, 그 사람과의 연애는 의심과 집착으로 내가 점점 을이 되었고, 약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게 아닌 것 같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온통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 신경이 곤두 서 있었다. 이 사람과 연애라는 것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단 둘이 길거리를 걸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커피숍도, 영화관도, 공원도. '데이트' 라는 것은 이 연애에서 당연함이 아닌 철없는 내 바램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졌던 것 같다. 꾸역꾸역 데이트라고 할 수 있는 것 하나는 이 사람이 좋아하는 겨울 시즌에 스노우보드 타러 갔던 게 그나마 데이트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단 둘이는 아니지만... 거기 안에서도 서운함이 여러 개 있었지만...










어느 날 남편인 이 사람의 미니홈피를 같이 본 적이 있었다. 연애를 시작한지 하루 만에 갑자기 연락두절이 되어 '뭐지?' 하며 당황했던 적이 있었고, 나에게 비밀을 만드는 것 같아 보였던 이 사람의 것들이 궁금했다. 그냥 느낌이 싸 했을때 끊어내야 했었는데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야 말았던 것이다.

 사진첩과 일촌 리스트에 있는 지현이라는 여자. 느낌이 싸했던 그 여자의 정체가 궁금했다. 이 사람은 친척 동생이라고 딱 잘라냈지만, 내 촉은 의심만 쌓여갔다. 비밀과 의심을 자꾸 크게 만드는 남자였는데 그때는 스크래치가 난 내 자존심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크게 화도 못 낼 거면서, 사귀는 동안 끌려다니기만 할 거면서 '이 남자 밟고 지나가고 싶다' 라는 생각에만 빠져 있었고, 내 촉에 이끌려 자꾸 파고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지현이라는 사람. 알고 보니 이 사람이랑 동네 술집에서 만나 같은 고향 전라도 광주라는 공통점으로 친해지게 되었고, 같은 동네라서 자주 저녁에 만나 술도 마시고 동네 산책을 했었던 모양이다. 결론은 또 이 사람은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게 가장 큰 팩트! 하지만 연락하고 만나지 말라는 이 말이 더 자극을 줬던 것인지 더 거짓말이 잦아졌고, 그로 인해 나는 집착이 더 강해졌다. 그렇게 겉으로는 사귀고 있지만 내 머릿속 신경은 온통 그 사람의 핸드폰이었다. 하지만 내 의심과 집착을 잠시 내려놓을 때가 있었다. 스노우보드를 타는 겨울 시즌 때였는데, 서운했던 스토리가 있다 하더라도 지현이라는 여자 때문에 의심과 집착은 잠시 잊을 수 있어서 어느 때보다도 가장 한시름 났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세 달... 시간이 흐르고 다음 해가 지나면서 이 사람을 짓밟을 생각에만 집중하다가 내 발등을 찍게 되버린 절대 해서는 안 될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나를 아꼈어야 했는데, 혼전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에는 '후회 해봤자 늦어버린 벌을 받은건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임신 소식에 남편이 생각보다 기뻐해주고, 시댁에서도 직접 들은 것은 아니지만 긍정의 반응으로 이 사람이 나에 대해 그래도 조금은 사랑이라는게 있었던 것일까? 라는 생각을 했었고, 나도 이 사람을 사랑하는 거겠지? 라며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려 했다.

하지만 여러가지 힘들었던 감정을 안으며 바람처럼 휩쓸리듯 결혼을 했고,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시댁의 첫날을 보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던 시댁에서의 둘째 날이었다. 일찍 아침밥을 먹고 시부모님은 밭일하러 나가셨다. 그 사이 잠깐 나갔다 온다는 남편의 말에 나는 잠시 쉬고 있었다. '띠리릭' 익숙한 남편의 핸드폰 문자 알림 소리. 남편이 핸드폰을 가지고 나가지 않아서 이때다 싶어 나는 몰래 뒤져보기 시작했다.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지현이라는 여자와 연락 안 한다던 남편은 여전히 문자와 통화를 주고받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주고받은 문자 내용이 둘이 만나기로 한 약속을 남편이 연락두절로 그 장소에 나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지현이라는 여자가 화를 내는 말투로 문자가 와 있었고, 이 후 며칠 동안 연락이 뜸했다가 어제 즉,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첫 시댁에 있었던 당시 남편과 그 여자는 다시 오랜만에 통화를 했었던 것이다. 통화 시간을 보니 저녁밥을 먹고 내가 설거지를 했을 때 남편은 잠시 집 앞에서 담배를 폈을 때였던 것 같다. 몹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주체되지 않는 감정으로 머리가 복잡했던 그 때 들어온 남편. 난 휴대폰을 보여주며 다짜고짜 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남편은 오히려 나보다 더 욱하며 휴대폰을 바닥에 집어던지고, 소리를 질러댔다. 난 언제부터인가 남편의 화내는 소리에 약자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남편은 집 밖을 홧김에 나가버렸고, 몇 분 안 시부모님이 들어오셔서 점심을 식당에서 먹었다. 감정을 추스르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밥만 먹었다. 이 나는 지현이라는 여자와 통화를 하려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겠다며 나 혼자 밖을 나섰다. 그 여자에게 전화를 걸고 나는 결혼했다는 사실과 지금 시댁에 와 있다고 내 현재 상황부터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지현이라는 여자는 믿지 않았다.

 "정말 결혼하셨다고요? 어제 오빠는 저한테 결혼했다는 말 없었는데요? 오히려 언니랑 아직 잘 사귀고 있냐고 물었을 때 맨날 싸우기만 한다고 잘 못지내고 있다고 하면서 헤어져야 하는데라고 하던데요."

 (개자식!) 온갖 욕설을 퍼붓고 싶었지만 계속해서 흥분을 감추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여자 친구인 나랑 몇 번 통화를 했음에도 왜 자꾸 만나는 건지, 그 사람이 먼저 연락을 했어도 그냥 씹어도 되지 않느냐 라는 말에 그 여자는 동네에 친한 오빠 동생일 뿐인데, 자기가 피할 필요가 있겠냐고 당당했었다. 그리고 이어서 한다는 소리가

 "사실 초반에는 서로 좋아하는 감정은 갖고 있었어요. 단 둘이 술자리도 많이 가졌고, 각자 자취방에서 2차, 3차로 술 먹고 취기에 올라 옷 벗고 관계까지 가지려고 한 적이 많았어요. 그런데 관계를 갖으려고 할 때마다 오빠와 나는 끝까지 잘 되지 않아서 남녀 관계보다는 친한 오빠 동생 사이가 낫겠다면서 더 친해진 거예요."

나는 이 충격적인 말에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듣기만 했다.

"언니! 누구에게나 과거는 있는 거잖아요."

이게 무슨 말인지. 내 귀로 듣고도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건지. 이게 지금 말이라고 하는 소리인지. 이게 자랑이라고 말하는 건지. 나한테 이 소리 하면 내가 뭘 어떻게 받아 들이라는 건지. 이 소리가 나 안심하라는 소리인 건지. 그냥 말문이 턱 막힐 뿐이었다.


첫 시댁에서의 2박 3일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나는 계속 말도 없이 창밖만 바라보면서 티 나지 않게 눈물만 흘렸고, 더 이상 이 지현이라는 여자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놈은 결혼 전이나 결혼 후에나 똑같이 나쁜놈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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