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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투비긴 Nov 24. 2021

[에세이.소설] 빛나지 않는 결혼

남편이 죽어도 눈물이 나지 않는만큼

 결혼 한 여자들을 보면 진주처럼 빛이 난다. 당연스러운 보통의 날들이지만 그런 평범한 일상에도 반짝반짝 빛나고, 혼자일 때보다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한 남편이 곁에 있을 때 가장 빛나 보인다.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도 그냥 평범했었던 것 같은데, 결혼하고 나니 가볍게 미소 짓는 모습 조차 행복하고, 사랑스럽다. 그 미소 뒤에는 든든한 남편이 지켜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빛나 보일까? 사람들에게 보이는 내 모습에 자신이 없었다. 행복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래야 내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결혼 실패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왜 남편이 사고로 죽었음에도 눈물이 나지 않았을까?


 8월  장마가 시작하는 늦은 밤, 남편은 어디서 술을 마시는지 연락도 없이 새벽이 돼가는데도 들어오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신경이 곤두서서 전화를 여러 번 했을 텐데 지금은 늦게 들어오든 말든 남편의 이런 행동에 많이 익숙해져 있다. 항상 늦게 자는 나는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본다. 한참 보고 있을 때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새벽 2시 7분, 남편의 전화다.

건조한 내 목소리

"여보세요. 왜" 

한껏 취해 보이는 남편의 목소리

"자기야~ 안 잤을 것 같아서 전화해봤어~ 뭐 사갈 거 있어?"

옆에 누가 있는 듯해 보인다.

"없어. 들어오면 조용히 들어가서 자."

'뚝..............."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몇 분 뒤, 다시 전화가 왔다.

"왜" 

"뭐 사갈 거 없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들어와서 자" 

"너 뭐냐! 내가 뭐라고 그랬다고 짜증인데!"

"사람 자고 있는데 왜 자꾸 전화하는데" 

"내가 못할 데에 했냐?" 

"술 먹고 늦게 오면 매너 좀 지켜" 

"내가 계집질했냐? 술만 먹으면 왜 지랄인데" 

나는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 대화의 포인트를 모르겠다. 특히 술을 먹고 취한 인간하고는 대화하기가 정말 싫다. 앞, 뒤가 안 맞는 소리들. 갑자기 언성이 높아지는 소리들. 분명 큰소리는 내가 쳐야 할 것 같은데 왜 내가 더 눈치를 봐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남편의 큰 소리에 가슴이 철컹! 말문이 막힌다. 어이도 없고, 답답하다. 난 이럴 때 또 생각한다.

'또 시작이겠다. 또 당분간은 분위기 싸해지겠네. 또 답답해지겠네.' 

늘 말다툼 시작으로 싸움이 커지면 당분간은 집안 분위기가 싸해지고, 나와 아들들은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러면 나는 상당히 억울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내 감정은 뒤로 덮어두고, 안주와 술을 준비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자존심보다 이 숨 막히는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아들들이 눈치 보는 것도 싫었다.

지금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대며 언성이 높아지며 말다툼하고 있는 그때,

"끼이이익!!!!!!" 

차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나고, 어딘가에 크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뭐야! 여보세요?"

전화는 안 끊겼지만 남편은 대답이 없다. 그렇게 한참 뒤,

"아....... 어떡하지? 핸들이 미끄러워지면서 부딪혔는데..... 아씨 술 마셨는데.... 네가 이쪽으로 와줘야겠다"

난 지금까지 대리운전으로 오고 있는 줄 알았다. 일을 또 벌려놓는 새끼. 화부터 났다.

"야! 이 쓰레기 새끼야!!!!!!!!!"

난 터져버렸다. 남편이 사고가 나서 어디에 다쳤는지, 크게 다쳤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화가 났다. 대뜸 욕하며 화를 내었을 때, 남편은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끊어진 전화. 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 길로 나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애들은 곤히 자고 있어서 조용히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러던 중 다시 울리는 휴대폰 진동소리.

"여보세요?"

"전화받으신 분이 배우자 분이신가요? 지금 대한 병원 응급실에 가는 중인데 환자분이 많이 위독하십니다."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큰애를 깨웠다. 상황을 말해주고, 많이 늦을 수 있으니 아침에 엄마가 없으면 아침밥 동생이랑 잘 챙겨 먹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라 하고 대한 병원으로 향했다.

우리 집에서 대한 병원까지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니 20분 걸린다. 어두운 새벽이라서 차가 한 대도 없었다. 대한 병원에 가까워질 때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사망하셨습니다."

사망!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운전을 하면서 통화를 하는데 그렇게 시끄러웠던 엔진 소리가 조용하게 느껴졌다. 모든 게 붕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사망'이라는 단어가 내 귓구멍에 가득 차 있어서 어떠한 소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벙어리가 되었다. 그냥 무덤덤 해졌다. 잠깐의 놀람과 잠깐의 먹먹함. 그 와중에 나는 운전을 하고 있었고, 어느새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있었다. 아무도 안 가르쳐 줬는데도 어디에 있는지 다 아는 것처럼 남편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담당자로 보이는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설명을 해주고, 남편의 얼굴을 확인하고, 남편의 물건들을 전달받았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시간만 흘러갔다. 그래도 할 건 하고 있었던 건지 장례까지 치르고 있었다.

발인 날. 나는 납골당 안치까지 계속 차 안에만 있었다. 누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기 귀찮았다.

지금까지 결혼생활하면서 상처 받고, 싸우고, 펙트 있는 말을 못 해서 혼자 답답해하고, 남편이 그냥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들은 정말 길었는데, 남편의 죽음으로 치러진 과정들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충격으로 쓰러지신 시어머니, 울고 불고 슬퍼하는 친인척들과 지인들. 이 사람들은 나를 오히려 위로를 해준다. 내가 큰 충격에 말을 못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가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를 해야 한다. 당분간은 애들은 친정에 있기로 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 나는 텅 빈 고요함 속에서 깊은 사색을 한다.

 내가 지금 슬픈 것일까? 속이 시원한 걸까? 점점 깊어지는 생각 속에 생각들.

 남편을 만나면서부터 결혼 생활들을 쭉 되짚어 보았다. 외로움이 컸던 내 결혼생활, 그 기억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 글을 쓰기 시작해본다. 나는 왜 남편이 사고로 죽었음에도 눈물이 나지 않았을까?

 이제부터 이야기를 꺼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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