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년 반의 로드맵 시작
21년 여름방학, 전공을 살리고픈 마음에 꾸준히 영상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해오던 신문방송학과 학생인 나는 문득 '내가 PD나 작가가 될 수 있을까?'하는 이상한 의문이 든다. 물론, 글쓰기나 영화/책 감상은 아직 좋아하지만 정작 TV도 안보고 넷플릭스는 구독도 하고 있지 않는 내가 정말 하고싶은 게 이 길에 있을까, 하는 생각에 모든 것을 원점에 두고 다시 생각해보았다. 아, 난 신방과니까 그쪽으로 직업을 가지게 되겠지. 그 막연한 생각은 미래에 대한 추동이었다기보다 미래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한 번도 진지하게 이쪽 길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도 없다는 생각이 부끄러웠고, 다시금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해 고민하다가 선택한 길이 AI였다.
아니, 사실 처음에는 내가 하고자 하는게 AI인줄도 몰랐다. 그 무렵 나는 막연히 '코딩'비슷한 걸 해놓으면 취업할 때 도움이 되겠지, 라는 생각에 'LB&C(언어, 뇌, 컴퓨터)'라는 융합전공을 제2전공으로 시작했었고, 그 때 처음으로 '자연어처리'라는 단어를 접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자연어처리라는 단어가 너무 만만해보였다. 한 1년 대충 여기서 코딩 배워서 나가면, 소위 기업에서 많이 가지고 있을 언어적인 데이터(Ex. 댓글, 리뷰 등)을 뽑아와서 인사이트를 얻는, 그런 분야인줄 알았다. '자연어'처리니깐. 난 자연어처리가 AI인줄도 몰랐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알 수 있듯, 제대로된 고민도 못해보고, 솔직히 코딩 붐에 쫓겨서 급하게 선택한 것도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다. 나도 사실 소위 전공자들이 싫어한다는 '코딩이나 해볼까?' 류의 사고가 없지는 않았기에 이에 대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처음 시작이 이렇지 않은 사람도 없을 것이니와, 잘못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 내가 어떤 스탠스를 쭉 가져갈 것이냐에 따른 선택에 대한 책임은 본인에게 있기 때문에.
나는 뻔한 것을 정말 싫어한다. 그리고 요즘 뻔한 구phrase 중에 하나가 '문과생의 코딩'이 된 것 같다. 비록 쫓겨서 선택한 진로이긴 하지만, 겉핥기 식으로 공부를 해올 사람들과 비교되기 싫었고, 할거면 제대로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당장은 몰라도 문제없을 부분들도 물고 늘어지는 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물론 원래도 그렇게 공부하긴 했지만, 더욱더 습관이 되었던 것 같다.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나도 500일 전에는 말그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점, 코딩은 해본 적도 없고 수학? e는 e^2, 2^e 드립 칠 때나 쓰는 건줄 알았지 수식에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사람이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현 상태가, 비록 이 쪽 공부를 하다가 중간에 벽을 느껴 포기를 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지는 몰라도 공부를 시작하는 것 자체를 못하게 하지는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막상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시작이 정말 막막했다. 일단 자연어처리가 뭐하는 것인지도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였다. 대충 친구에게 수학을 해야한다는 것도 공부를 하기로 한 뒤에 안 사실이고(도대체 뭘 보고 이 쪽 공부를 하겠다고 생각했던 걸까), 코딩은, 학원을 가야 하는건가... 오히려 나와있는 자료들이 너무 많다보니깐, '이것들을 다 해야 한다고...?'하는 생각에 오히려 뭘 공부해야 하는지 더욱 혼란스러웠다.
지금도 종종 마음 속으로 되뇌일 때가 있다.
강도 10의 일을 1개 하는 것보다, 강도 1인 일을 10개 하는 것이 훨씬 힘들다.
해야 할 일의 절대적 갯수(양)이 많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그 일을 하는 데에 지나치게 많은 힘이 들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어떤 일을 하기 전에도 지레 겁이 나거나 벌써부터 힘이 든다면, 내가 해야하는 일이 무엇무엇이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그 할 일들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나, 단계를 나누는 것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전 단계를 말하는 것이며, 일에 다가가기 전에 단순히 인지적으로 '1의 일이 10개일 뿐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을 뜻하며, 이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수월하게 해준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물론 누구든 어떤 것이든 공부할 수 있는 시대이나, 상대적으로 늦은 나같은 사람들은 배워야 할 절대적인 분야의 수가 많고, 그렇기에 이런 식의 멘탈 관리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작 단계는 정말 누구나 할 수 있다. 너무 겁먹지 말고, 겸손함만 가져가도록 하자.
어쨌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가장 처음으로 한 것은, 당연하지만 파이썬 공부였다. 물론, 지금와서는 '다른 언어들도 찍먹은 해놓을걸...'하는 생각이 들지만, optional한 것이고, 그것들을 할 시간에 파이썬 공부를 한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특히, AI/데이터 분야의 경우 파이썬에 좋은 툴들이 정말 많기 때문에 공부를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파이썬 하나만 잘 다루어도 남들보다 공부를 하면서 막히는 구간이 몇 배는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름방학동안은 그렇게 파이썬 유튜브 하나를 여유있게 보고, 기본기를 익혔다. 유튜브 영상은 '나도코딩'님의 '파이썬 코딩 무료 강의'를 들었고, 기본기는 '백준'사이트의 낮은 단계의 파이썬 문제를 풀며 익혔다. 그럼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6시간 다 들어야 하나요? 네. 저 정도는 다 들어놓으시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고 저걸 한 번 다 듣고 완전히 이해하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번 들으면, 나중에 내가 모르더라도 '이런 기능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내지는 '내가 모르는 게 A이니깐 A를 검색해봐야겠다'라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백준은 뭔가요? 비전공자로서 이쪽 세계에 정말 신기한 점중에 하나가 백준같은 사이트가 있다는 점이었다. 쉽게 말해서, 코딩의 정말 기초부터 알고리즘 문제들까지 내 실력을 일종의 점검을 해 볼 수 있는 사이트이다. 처음에는 숫자를 받아서 덧셈, 뺄셈을 하는 등의 기본적인 작업들을 할 수 있는지 문제를 풀어보며 확인해보자.
그렇게 여름방학 한 달 정도를 파이썬 공부를 했다. 아직 자연어처리는커녕 AI, 아니 수학은 손도 못댔다. 그렇다고 파이썬을 잘 하는가? 아직 겨우 덧셈을 하고, 'Hello, World' 정도만 해본 상태이다. 그렇게 6시간 들은 파이썬 강의와 처량하기만한 내 파이썬 실력을 믿고, 본격적으로 '자연어처리' 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그게 21년 9월, 3학년 2학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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