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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이토록 소중한 라디오

라디오는, 늘 옳다

by Johnstory

오전 11시 27분, KBS Classic FM 93.1을 들으며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다.



내가 듣는 라디오 채널은 정해져 있다. 가끔 차를 타고 장거리 운전을 하거나 할 때는 다양한 채널-이를테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내용들이 상대적으로 가득한-을 듣기도 하지만 매일 내가 듣는 라디오는 한 채널이다. 학생 때 잠이 안 오거나 늦게까지 공부를 해야 했을 때는 CBS FM이나 SBS 파워 FM을 들었다. 친구의 추천이 있기도 했고, 당시 SBS 라디오의 정지영 아나운서 팬이기도 했다.




라디오를 생각하니,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있다.



고등학교 2학년, 그러니까 1997년도 가을 무렵으로 기억한다. 당시 '별밤 뽐내기' 대회에 나갔었다. 근처 여고에 다니던 친구의 오빠가 라디오 PD로 있었는데, 출연자를 급히 구한다는 연락을 받고 정말 아무 준비 없이 나가게 되었다. 당시엔 휴대전화가 없던 때라, 집 전화로 수화기를 들고 노래를 불렀는데 생각할수록 웃기다. 그것도 나름 행사랍시고 근처 사는 친한 친구들을 다 불러서 거실에 앉혀놓고 응원을 시켰다.

당시 별밤은 이적이 진행하고 있었고 그날 패널로 유영석과 다른 가수들도 있었다. 뭐라고 피드백을 주긴 했는데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지적을 받았던 것 같은데, 재미로 나간 라디오 프로에서 슈스케나 경연도 아닌 상황에서 왜 저런 얘길 하지 싶었다.



신기한 경험이라 공테이프에 녹음했었는데 이사를 다니고 방정리를 하며 아마 폐기했던 것 같다. 상품으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탔고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라디오와의 인연에 한 줄 써볼 만한 일이었다고 회상한다.



고정적으로 한 채널을 듣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사실 가장 좋아하는 방송은 정해져 있다. 매일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진행되는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이다. 2015년부터 진행된 방송으로 알고 있는데 벌써 10년이 넘었다. 저녁 6시에 들려오는 오프닝 음악을 들으면 말도 안 되게 마음이 편해진다. 더더욱 전기현 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제주도 바다 위로 지는 해의 노을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는 기분이다. 오늘 하루도 아주 잘 보냈음을 위로받는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 듣고 있는 방송이다.



그리고 평소보다 늦게 잠들 때, 밤 10시부터 시작되는 이상협 아나운서의 <당신의 밤과 음악>를 듣는다. 작가이자 아나운서인 이상협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남자인 내가 들어도 너무 매력 있다. 특히 밤 10시에 듣는 그 목소리는, 들을 때마다 축복을 받은 음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편안함과 설렘이 가득한 시간을 만들어주고, 말 그대로 좋은 밤을 보낼 수 있도록 내 하루의 완성을 돕는다.



라디오는 늘 가까이에 있었다. 보이스 레코더를 몇 해 전 구입했는데 FM 라디오 기능이 있는 것으로 구입했고, 책상에는 블루투스 스피커 겸 라디오가 있다. 휴대전화엔 어플을 설치해서 언제든 이동 중에라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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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는 늘 가까이에 있다



사실 라디오를 틀어두고 딱히 신경을 안 쓰고 내 할 일을 할 때가 더 많다.



그럼에도 라디오는, '그래도 괜찮다'며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다. 간섭하지 않고 나의 감정을 존중하며 있는 그대로 품어준다. 내게 라디오는 그런 것이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내 할 일을 하고 있을 때에도 쉼 없이 흘러간다. 그러다 문득, 나의 귀를 사로잡는 음악이 나올 때 슬쩍 한번 쳐다봐도 그것으로 충분해지고 완성되는 존재가 된다. 혼자여도 혼자가 아닌 것이 된다. 좋으면 좋은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그때그때의 역할을 알아서 해내고 있는 라디오는 고마운 존재다.



언젠가 그런 기회가 되면 라디오 방송에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저 목소리로 누군가의 하루에 힘이 되고 위안이 되며 에너지가 되기도 하는 매체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의 매력과 보람이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기회가 있다고 본다. 내게 이토록 소중한 라디오를 알아볼 수 있는 지혜와, 소중한 음성과 다채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음은 인생의 축복이다. 라디오 만으로도 인생에 감사함을 이어갈 이유는 충분하다. 어떤 방송으로 위로를 받든, 어떤 목소리로부터 편안함을 선물 받든-



라디오는 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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