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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Jul 13. 2023

신 어벤저스 촬영 중

박해정의 동시 <신 어벤저스>

신 어벤저스


조금만 세상을 눈여겨본다면

어디서든 신 어벤저스가

촬영 중이라는 걸 알 수 있지.

쌀자루 같은 건 거뜬히 들어 올리는 헐크,

차 똥구멍까지 꼼꼼하게 살피는

아이언맨 정비소 아저씨,

휭 하고 집과 집 사이를 날아다니는

스파이더맨 택배 아저씨도 있지.

시켜만 준다면 뭐든 할 수 있어!

인력원 앞에는 팔짱을 낀 채

배역을 기다리는

블랙위도,

호크아이,

토르도 보이지.

통닭을 실은 캡틴아메리카가

밤늦도록 도로를 질주하는 건

아직 촬영이 끝나지 않았다는 거야.


출처 《넌 어느 지구에 사니?》(문학동네, 2016)




 몇 년 전, 우연히 보게 된 세 컷 만화가 있다. 길 건너편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공무관을 보는 두 어머니의 말을 다루고 있다. 한 어머니는 아이에게 "너 공부 안하면 나중에 커서 저렇게 돼"라고 말하고, 다른 어머니는 "너 공부해서 저런 분들도 살기 좋은 세상 만들어야 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인다. "공부 안 하면 이렇게 무식한 사람 되는거야." 당연히, 두 어머니 모두 무식하기 짝이 없다.

 이 만화는 2017년, 미국 소셜 뉴스 웹사이트 레딧(Reddit)에 "It's all about a better point of view"라는 제목으로 올라왔다. 가장 공감을 많이 받은 댓글은 "노동직은 모든 사회에 필수적이며 그들을 동정 가득한 눈으로 보는 것을 멈춰야만 한다"는 내용이었다.(출처: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미국 유명 사이트에 올라온 韓만화, 중앙일보) 한국 부모를 풍자하는 내용의 만화이지만, 한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입이 적고,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직업은 천대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해정 시인은 육체노동자를 영웅으로 만들어주었다. 교육 받지 못하고, 사회에서 무시 받는 사람들이 아닌, 특별한 재주와 능력을 지닌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하였다. 육체노동을 하기 위해서 "쌀자루 같은 건 거뜬히 들어 올리는" 힘이 있거나, "차 똥구멍까지 꼼꼼하게 살피는" 섬세한 사람이거나, "뭐든 할 수 있"는 만능 재주꾼이어야 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쉽고 짧은 이야기로 사람들의 관점을 전복시키는 것은 동시가 가진 힘이다. <신 어벤저스>에는 그런 힘이 있다. 다만, 노동자를 영웅의 자리로 끌어올리는 일은 그들의 낮은 지위를 상기시켜주는 일이기도 하다. 끌어올리는 행위가 돋보인다는 것은 대상이 아래로 깊숙히 위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정비소 아저씨가 영웅인 이야기는 영웅이 아니라는 현실을 강조하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어디서든 신 어벤저스가/ 촬영 중"이라는 것은 의미가 있다. 택배 아저씨가 스파이더맨이 될 때는 오직 일을 하고 있을 때 뿐이다. 그들이 영웅인 이유는 작업에 필요한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퇴근 이후의 삶과 관계 없다. 촬영이 끝나면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삶일 것이라는 암시로 볼 수 있다. 이는 노동자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문제 삼지만, 그들의 삶을 내려다보지 않는 시인의 시선으로 가능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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