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현 시인의 동시집 《내가 왔다》(문학동네, 2020)에는 "매일 만나는 사물에서, 자연에서, 아이들에게서"(<시인의 말>) 발견된 새로운 순간과 몰랐던 이야기로 가득하다. 시인의 일상에서의 발견이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시선과 유머가 감지된다.
방주현 시인은 누구나 보았지만 쉽게 지나친,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대상에서 숨은 이야기를 발견한다. 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무심코 지나친 삶의 순간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분명 경험했던 순간과 장면이지만, 너무나 일상적이기에 쉽게 지나치게 되는 것들이다. 시인은 존재감 없던 세상의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목소리와 표정을 찾아준다.
<달팽이 안전 교육>은 교사 달팽이가 학생 달팽이에게 전하는 말이다. 달팽이에게 "아, 귀여워!"는 지대한 위험이다. 인간의 본능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귀여움이 느껴지는 존재를 만지고 싶어하는 것 같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주인 없는 강아지나 고양이가 지나가면 손을 내민다. 그러다 가까이오면 머리라도 한 번 쓰다듬는다. 어떤 대형마트에는 고객들이 만질 수 있도록 인형 하나를 따로 진열해두기도 한다. 그러니 달팽이를 보고 "아, 귀여워!"라고 말하는 사람의 다음 행동은 뻔하다.
그렇기에교사 달팽이는 "있는 힘껏 달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달팽이는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잡히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태생적으로 달팽이는 인간보다 빠를 수 없기 때문이다. 유감이지만 "다시는 친구들을 못 만나"는 점은 달팽이가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일 것이다.
달팽이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은 달팽이에게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달팽이는 인간 앞에 무기력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시를 읽고, 비오는 날 달팽이를 가지고 놀던 지난 날을 반성했으며, 달팽이에게 미안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에는 유머가 감지된다. 있는 힘껏 달리지만 결코 인간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달팽이의 모습이 독자의 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나 그 웃음은 건강한 웃음일까? 힘을 가진 존재가 힘이 없는 존재를 유희거리로 삼는 행위는 일종의 폭력이 아닐까. "다시는 친구들을 못만나"는 일은 영원한 이별 혹은 죽음을 의미한다. 가볍게 읽고 넘어갈 동시에 혼자 진지하게 반응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동시가 인간이 가진 권력에 대한 반성으로 읽히는데, 웃음을 유발하는 말법이 다소 마음에 걸린다. 반성이나 경고의 메시지를 던질 땐, 단호한 어조가 적합하지 않을까. 무거운 문제를 가벼운 상황으로 치환하는 것은 낯선 형식이라는 점에서 문학적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까지 가볍게 만들어 버리는 건 문학이 아니라 유희일 뿐이다. 웃을 수 없는 문제 앞에서는 진지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하는 자세가 필요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