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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Dec 04. 2023

희망을 말하는 올바른 방식

인간만 골라골라 풀(최영희, 주니어김영사, 2017)

 빛과 물이 넉넉한 행성을 찾아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외계생명체가 있다. 이름은 아그리꼴라. 그들의 이름을 지어준 건 지구의 연구원 김박사다. 김박사는 아그리꼴라의 정착을 돕다가 그들의 지구 침략 계획을 알게 된 이후 도망쳐 나와, 두룽마을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며 아그리꼴라에 대항할 방법을 연구하는 중이다.

 아그리꼴라가 주는 다이아를 대가로 김박사가 발명한 것은 인간만 골라서 공격하는 풀이다. 자신이 발명한 풀에 대항하는 방법을 연구하던 김박사는 아그리꼴라에게 위치가 발각되어 쫓기는 신세가 된다.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동물 언어 번역기를 두룽마을 어린이 풍이에게 남기게 된다.

 풍이는 두룽마을 어린이다. 포켓몬 카드를 좋아하며, 라이츄 카드를 뽑는 일이 소원이다. 길을 가다 만난 무서운 누나 도아리를 피해, 김박사의 문구점으로 향한다. 쿠폰으로 포켓몬 카드를 사기 위해서다. 그러나 문구점은 문이 닫혀 있었고, 풍이는 문구점 옆 슈퍼 아저씨로부터 한 장의 편지와 목걸이를 받는다.

 세상이 홀딱 망할 징조가 있거든 목걸이를 걸고 싸우라는 내용의 편지는 김박사가 남긴 것이었다. 분홍색 장난감 목걸이는 친구들의 놀림거만 될 뿐이었다. 울면서 집으로 뛰어가던 풍이의 주위에는 어느새 아그리꼴라가 심은 검은 풀이 무릎 높이 만큼 자라 있었다.

 미국에서의 첫 사고를 시작으로, 검은 풀들은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풀에 잡아먹혔다는 뉴스에 풍이는 엄마의 출근을 말렸지만, 엄마는 듣지 않았다. 김박사의 편지, 풀들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 계속되는 뉴스에 풍이는 엄마를 찾아 떠난다. 그러나 이내, 돌아온다. 자전거가 살짝 건드린 풀에 풍이가 먹힐 뻔 했기 때문이다. 풍이를 구해준 건 무서운 누나 도아리였다.

 도아리는 무서운 누나가 아니었다. 3학년짜리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리는 101가지 방법이라고 소문 났던 그녀의 공책은 사실, 내가 사랑하는 두룽마을의 101가지 이야기였다. 도아리는 검은 풀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녀가 알아낸 사실은 검은 풀은 먼저 공격한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도아리와 풍이는 김박사가 남긴 목걸이의 동물 언어 번역기능을 찾는다. 목걸이를 목에 걸고, 풍이는 엄마를 찾는 여정을 떠난다. 하지만 이내 검은 풀들에게 잡히게 된다. 그 때, 항상 풍이의 엉덩이만 보면 달려들던 못된 염소 "염맨"이 나타난다. 염맨은 검은 풀을 먹어 풍이를 구해준다. 풍이가 자신과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전세계로 퍼진 검은 풀에 대처하는 방법은 다양했다. 총을 쏘고, 트랙터로 밀고, 심지어 검은 풀은 육식 식물이라며 살처분 대상인 돼지를 던져주기도 했다. 모두 통하지 않았다. 검은 풀은 인간만 공격하고, 동물들이 그들의 천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아리는 핸드폰으로 여기저기 문자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들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어른을 찾기 위해서.

 김희뜩 기자는 그들의 말을 처음으로 믿고, 귀기울여준 어른이었다. 그는 풍이와 아리가 염소들과 함께 검은 풀을 무찌르고 있는 모습을 촬영하고 중계했다. 지금 당장 농약 살포 및 폭탄 투하 작전을 취소해야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염소들과 함께 검은풀을 박살내는 풍이와 아리 앞에 아그리꼴라가 나타난다. 그들은 염소들이 왜 인간을 돕는지 밝히기 위해 풍이를 다그친다. 풍이는 모든 동물들이 인간을 경멸하고 싫어한다는 그들의 전제에 오류가 있다고 알려준다. 인간과 지구에 대해 더 연구하고 와야겠다는 말을 남기고 아그리꼴라는 사라진다.


 아그리꼴라는 행성에서 농사를 짓는 외계 생명체다. 그들이 인간을 없애고자 하는 이유는, 인간의 위치를 대신하고, 지구를 지배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다. 인간이 사악한 포식자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존재들에게 유해한 인간을 사라지게 하여 평화롭게 농사 지으며 살아가겠다는 생각이다. 하나의 종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현상 자체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동물들에게 못된 짓을 하는 건 맞아. 하지만 가끔은 다른 동물들과 친구가 되기도 한단 말이야. 모든 동물들이 인간을 미워하는 건 아니야."(129쪽)라는 말이 아그리꼴라를 물러나게 만들었다. 인간과 다른 존재의 불균형적 관계 위에서 "가끔" 보여지는 예외적 행동이 외계 생명체의 침략을 막았다. 인간은 지금처럼 다른 동물을 지배하면서, 가끔 그들과 공존하기 위한 노력을 해나가면 되는 것일까? 차라리, 아그리꼴라의 목적이 온전히 지구를 위해서였다면 인간은 사라져주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아동문학에서 완전한 디스토피아를 말하기는 쉽지 않기도 할 뿐더러, 그들에게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각박하고 미래가 없어 보이는 세상에서 어떻게든 희망의 단서를 찾아 어린에게 펼쳐보이는 일이 아동문학의 윤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동물들이 인간을 미워하는 건 아니야" 말 뒤에 소외된 존재들이 눈에 밟힌다. 수 만가지 잘못 중에서 한 두가지 잘한 점을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잘못을 합리화하는 방식일 수 있다. 오히려, 잘못에 대한 깊은 반성이 어린이에게 희망을 말하는 올바른 방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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