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것들에 대한 기록
《벌에 쏘였다》(남호섭, 창비, 2012)
지금-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문학으로 기록되는 이유는, 그 일이 잊히거나 소외되지 않았으면 하는 동기나 역사적 책임 의식 때문이다. 문학으로 기록되는 일은 결국 쓰는 이의 선택의 문제다. 어떤 일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양식에 담아 기록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문학으로 형상화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시대의 사건을 기록하고자 하는 이가 적으면 적을수록, 문학을 통해 볼 수 있는 세상은 좁아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동시의 형식으로 기록하는 일을 수행하는 이는 남호섭을 제외하면 떠오르는 시인이 없다. 우리 동시는 세상을 들여다보는 직접적인 창으로서 기능하는 리얼리즘 동시의 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사건을 기록하고 알리는 일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기사, 뉴스이다. 뉴스와 문학의 가장 큰 차이는 속도다. 기사와 뉴스는 신속성이 생명이므로, 빠른 시간에 전달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학은 어느정도 숙의 기간을 거쳐 세상에 나온다. 물론, 그 기간은 며칠이 될 수도,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문학은 뉴스나 기사가 휩쓸고 간 사건의 현장에서 소외된, 우리가 놓친 부분들에 대한 기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2011년 7월 27일 기록적인 폭우의 현장에서 “신문 방송 어디에도” 없던 순직 소방관 김종현, 순직 집배원 차선우의 이야기와 같은 것들이다.
백 년 만에 폭우가 쏟아졌다.
스물아홉 젊은 소방관 김종현
강원도 속초에서 119 신고를 받고
학원 건물 3층에 고립된 고양이를 구하려다
밧줄이 끊어져 순직했다.
고양이는 무사했다.
스물아홉 동갑 집배원 차선우
경기도 용인에서 거센 물살에 휩쓸렸다.
우편물을 동료에게 건네고
배수로에 빨려 들어가 순직했다.
우편물은 무사히 배달되었다.
서울 한복판이 물에 잠겼다는 소식뿐
신문 방송 어디에도 이들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두 사람은 같은 해 태어나 같은 날 죽었으나
한 사람에게는 고양이 구한 일로
국립묘지에 묻힐 수 없다는 결정이 내려졌고,
한 사람은 집배원 최초로 국립묘지에 묻히게 되었다.)
-<2011년 7월 27일> 전문
뉴스가 재해를 기록할 때, 수년만의 기록적인 폭염, 폭우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지만 정작 방송되는 화면은 비슷하다. 날씨 뉴스에서 당장 화면에 담기 어렵거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매번 후순위로 밀린다. 선풍기 하나로 폭염을 나고 있는 쪽방촌 사람들, 반쯤 물에 잠겨 있는 자동차가 즐비한 도시의 상황 같은, 지금 당장 화면에 담을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영상 자료를 활용하게 된다.(고통 구경하는 사회(김인정, 2023)) 그러니 지방의 피해 소식은 항상 늦고, 비슷한 피해라면 “서울 한복판”의 피해 상황이 날씨의 메인이 되기 마련이다. “신문 방송 어디에도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는 말이 사실인지, 극적 상황을 위한 설정인지는 알 수 없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곳에서 시인이 기록하는 것은 "백년 만의 폭우"가 휩쓸어 가버린 사람이다.
시인이 기록하는 것은 주로 사람이다. 세상의 시선이 미처 닿지 못한, 누군가 말해주지 않으면 묻혀버렸을 지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 기록하고 전달한다. 동시집 제5부에는 조마리아와 곽낙원, 소선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역사적 의식과 더불어 소외된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바탕으로 쓰였을 것이다. 안중근, 김구, 전태일이라는 이름 뒤에 소외된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그들의 이름을 호명하게 된 이유일 것이라 생각한다.
역사적 사건, 지금-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서 우리가 놓치고 지나간 것은 무엇일까. 앞으로 일어나는 사건 속에서 소외되는 자리를 밝혀주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그리고 그 일을 어린이에게 어떻게 알려줄 것인가. 동시는 이 일을 어떤 방법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남호섭의 동시가 남긴 질문이다. 동시의 언어로 현실을 기록하고 있는 시인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한 편으로, 더 많은 시인이 더 많은 곳을 밝혀주었으면 한다. 동시를 통해 볼 수 있는 세상이 넓어질 수 있도록. 그리고 동시를 통해 세상을 보는 일이 세상을 바꾸는 것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