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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Dec 06. 2023

왜곡된 욕망에 균열을

가느다란 마법사와 아주 착한 타파하(김혜진, 사계절, 2023)

 가느다란 마법을 쓰는 마법사가 있다. 찢어진 옷을 실로 꿰메는 일, 눈에 들어간 머리카락을 빼내는 일은 마법사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가느다란 것은 무엇이든 잘 다룬다. 마법 학교를 졸업 한 뒤 '갓 졸업한 마법사를 위한 작은 방'에 도착한다. 참새가 마법사를 찾아왔다. 참새는 마법사에게 향나무를 살려달라며 도움을 청한다.

 동네 어느 골목에 위치한 향나무는 참새에게 최고의 쉼터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매일 쑥쑥 자란다. 자라지 않아야 하는데 쑥쑥 자란다. 나무는 크면 클수록 좋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가지가 너무 커져 위험할수도 있는 나무를 사람들이 베려고 한다. 참새는 보금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다.

 마법사가 보기에도 향나무는 이상했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잎이 푸릇하고 울창했다. 참새는 누군가 빨간 주전자로 무언가를 붓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마법사는 나무의 틈 사이로 무언가를 느꼈다. 그건 '소망'이었다.

 서리가 향나무를 키우는 이유는, 봄을 보기 위해서다. 봄이 와서 녹기 전에 향나무를 크게 키워 그늘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서리는 자신의 소망을 반대하는 자들을 위협했다. 나무를 베어버릴 지도 모르는 이층집 할아버지의 계단을 얼리고, 다치게 한다.

 서리의 횡포는 점점 커졌다. 향나무는 하루 밤사이 두 배는 커졌고, 골목은 서리가 지배했다. 가느다란 마법사는 서리를 녹이기로 결심하고, 둘은 대결을 펼친다. 서리는 마법사를 얼어붙게 만든다. 심장까지 얼어붙을 일만 남은 그 때, 가느다란 마법사는 서리 마음의 틈새를 발견한다. 골목에서 유일하게 녹지 않은 곳, 작은 씨앗이 있는 텃밭이었다.

 "저 화단요. 씨앗이 있어서 부러 얼리지 않은 거지요? 봄에 싹틀 새싹을 위해서요." 마법사의 한 마디로 서리의 목소리가 누그러들고, 행동을 멈춘다. "녹아서 땅속으로 스며든 서리 덕에 씨앗들이 싹을 틔울 거예요. 잎을 내고 꽃을 피워 봄을 누리겠지요. 물이 되어 기억을 잃었을 뿐, 당신은 해마다 그렇게 했을 거예요. 꽃과 함께 봄을 만났을 거고요." 마법사의 말에 서리는 믿어보겠다는 말을 하며 물러 난다.

 말 한마디로 사건이 해결되었다. 처음에는 사건의 주된 갈등이 너무 쉽게 해소된다고 생각했다. 이야기의 중심 줄기가 왜소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문득, 어떤 불가능한 소망에서 출발한 왜곡된 욕망은 그것을 알아봐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해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리는 자신의 소망을 알아봐주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아름답다고 말하는 봄을 만날 수 없는 자신의 비참한 운명에 관심 가져주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법사의 말 한마디에 그토록 쉽게 물러날 수 있었던 것이다. 향나무를 점점 크게 키운 것도 자신을 알아봐달라는 아우성이었을지 모른다. 결국, 서리가 가진 욕망의 틈새는 관심이다. 단단하게 왜곡된 욕망에 균열을 내고, 무너뜨려 새로운 삶의 방식을 구축하게 하는 일은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추가.

 가느다란 마법사와 아주 착한 타파하는 다채로운 상상이 담겨 있다. 제목부터가 그렇다. 이 책은 제목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것 같은데, 제목의 비밀은 책을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제목 뿐 아니라, 타파하가 보여주는 글자 마법은 글자가 가진 놀이 요소를 보여준다. 이야기의 맥락과 단단한 결합을 맺고 있지는 않아 다소 아쉬운 점이 있지만,(종이의 글자가 바뀌었는데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그대로 물건을 사다니, 전개의 개연성이 다소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어린이 독자에게는 충분히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글자, 낱자 등을 활용한 글자 변환은 동시나 그림책에서는 이미 자주 사용되는 방법이다. '가느다란 마법사'는 이야기의 맥락을 부여 받았지만, '아주 착한 타파하'는 이야기와 좀 더 긴밀한 연결 고리가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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