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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Dec 11. 2023

현실의 구덩이에서 탈출하려면

구덩이에 빠졌어(김미애, 바람의 아이들, 2023)

 어린이들에게 동화는 왜 필요할까? 어린이들은 동화를 읽어야 할까? 읽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전에, 나는 왜 지금에서야 동화를 읽고 있을까. 나는 1993년에 태어나 2000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흔히 말하는 아동문학의 황금 시대에 나는 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가 아니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하는 것을 좋아했고, 축구가 끝나면 학원을 가거나,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컴퓨터 앞에 앉아 슬라임에게 표창을 던지거나, 물풍선을 이어붙여 상대를 물방울 안에 갇히게 하는데 열중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책과 더욱 멀어졌다. 학교가 끝나면 곧장 학원 다니기 바빴고, 시간이 나면 쇼파에 앉아 온갖 예능 프로그램을 섭렵했다. 나에게 문학 작품은 내신 시험에 나오는 텍스트에 불과했다. 문학을 잘 읽는 다는 건, 작품과 작가에 대한 배경 지식을 잘 외워서 시험 문제를 맞히는 일에 불과했다. 나는 문학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나는 문학이라는 것을 모르고 성인이 되었다. 그래도 시험 공부 하며 시나 소설은 보았지만, 동화는 정말 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동화를 읽은 유년의 경험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활용되는 지 알 길이 없다. 어린 시절 나를 떠올리면서, 그 때 나에게 이런 책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추측해 볼 따름이다. 동화를 모르고 자라서 손해 본 적은 없지만, 동화를 모르고 자라서 아쉬운 점은 있다. 나는 예민하고 소심한 성격이라, 어떤 어려움에 빠졌을 때 그 곳에서 허우적 대는 시간이 길었다. 그러나 언제나 멋지게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많이 아는 어린이였다면, 문제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을 것 같다. 그 곳에서 나올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동화의 내용이 현실에 적용될 수는 없지만, 동화를 읽으며 느꼈던 막연한 희망이 현실을 살아가는 힘이 될 수는 있다.

 『구덩이에 빠졌어』는 여우와 토끼가 소풍을 가다 구덩이에 빠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우와 토끼는 함께 소풍 가기로 한 돼지를 기다린다. 그러나 돼지는 놀기 위해 파놓은 것인 줄 알고, 구덩이로 얼른 들어와 버린다. 노는 걸 좋아하는 돼지는 구덩이 안에서 진흙 놀이를 한다. 진흙을 길게 뭉쳐 벽에 붙이고, 지렁이를 만들었다가, 코브라도 만든다. 코브라에 놀란 토끼가 머리를 내려쳐 고래가 되었다가, 나비가 되었다가, 과자가 되기도 한다. 함께 소풍 가기로 했던 곰이 구덩이를 들여다 본다. 힘이 센 곰은 넝쿨을 내려 모두를 끌어당기려고 한다. 그러나 여우가 힘을 세게 주는 바람에 곰이 딸려 들어오고 만다.

 구덩이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던 동물들 머리 위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구덩이에 물이 차기 시작한다. 여우는 간식이 담겨 있던 바구니를 뒤집어 올라탄다. 물이 차면서 높이 떠오른 여우 귀에 나뭇가지가 닿는다. 나뭇가지는 당기는 만큼 올라갔다. 여우는 나뭇가지를 이용해 탈출 하기로 한다. 나뭇가지에 바구니를 묶고, 세게 당겨 구덩이 위로 날아가는 방법이다. 제일 가벼운 토끼부터 차례로 탈출한다. 돼지까지 탈출하니 곰은 혼자 남았다. 친구들이 내려준 넝쿨을 잡고 올라가려고 하니 벽이 미끄러워 쉽지 않다. 여우, 토끼, 돼지는 커다란

통나무를 구덩이로 내려준다. 곰은 무사히 탈출하고, 친구들은 여우집으로 가 몸을 녹이고, 따뜻한 차와 과자를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구덩이에 빠졌다가 구덩이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독자는 구덩이에 나오는 이야기를 읽었으니, 구덩이에서 나오는 경험 하나를 얻게 되었다. 책의 세부 내용을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려움을 극복했던 느낌 정도는 간직하게 될 것이다. 삶에서 필요한 경험을 미리 체험하는 일이 문학이 가진 효용 아닐까 생각한다. 어린이는 살면서 크고 작은 구덩이에 빠지게 될 텐데, 그 속에서 탈출했던 문학적 경험이 분명 현실의 어느 순간 도움이 되리라. 그러니 현실의 구덩이에서 잘 탈출하려면, 제대로 한 번은 빠져봐야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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