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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Mar 25. 2024

당신의 자유로운 로맨스를 위한 로맨스  

김다노의 동화집 『최악의 최애』(다산어린이, 2024)

 언젠가 말 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요즘 로맨스에 빠져있다고. 사실 돌이켜보면 내가 로맨스에 빠진 건 최근의 일은 아닌 것 같다. 기억 속 가장 오래 된 드라마는 쾌걸 춘향(2005)이다. 그 전에 야인 시대(2002)도 재미있게 봤지만, 주먹 쥐고 서로 바라보며 따라라라 랄라라랄라 랄라 노래에 맞춰 빙글빙글 돌기 위해 봤다. 재미있었지만, 다음날 친구들과 야인 시대 따라하며 놀기 위해 열심히 봤다.  

 쾌걸 춘향에서 한채영과 재희가 보여준 알콩달콩한 장면은 아직 머리와 마음에 남아있다. 어떤 내용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떠오르는 노래와 장면이 있을 뿐이다. 특히, 떠나는 버스를 따라 울면서 뛰어가는 재희의 모습이 비교적 선명히 그려진다. 그 때부터 나는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좋아했나보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나도 그런 사랑이 하고 싶었던 것인지,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이 멋있었던 것인지, 사랑이 뭘까 궁금했던 건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사랑 이야기, 로맨스를 좋아하는 이유를. 로맨스 이야기에 빠져 사는 덕후는 아니지만, 로맨스가 없는 드라마는 별로 즐기지 않는다. 뻔한 로맨스가 있는 드라마보다는 내가 경험하지 못 했던 그러나 충분히 경험할 만한 갈등이 있는 로맨스가 재미있다. 최근에 본 작품에서는 이혁진 소설 원작의 『사랑의 이해』,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알지 못했던, 그러나 분명 존재하는 사랑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 

 사랑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세상에 사랑의 형태는 모래알처럼 많아서, 사랑을 정의하려는 순간 사랑은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릴 것이다. 사랑을 정의하는 건 언제나 불가능하다. 그러니 사랑은 설명하기보다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내가 경험한, 내가 본 만큼의 사랑만 알 수 있다. 사랑을 알려면, 그 만큼 많이 사랑하고, 많은 사랑의 형태를 경험해야 한다. 직접 혹은 간접의 형태로.

 김다노는 사랑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심상치 않다. 인물에 대한 내용 없이 이야기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작품 속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심각한 스포일러가 된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작품이 워낙 좋아서,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피해 없도록 작품 이야기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그래도, 맛보기로 다섯 이야기 중 첫 이야기에 대해서는 간략히 말하고 싶다.

 무지와 미지의 사랑 이야기다. 무지는 남학생, 미지는 여학생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지는 처음에 미지의 고백을 받지 않았지만, 결국 미지를 좋아하게 된다. 좋아하는 마음을 인정하게 된 걸수도 있겠다. 무지가 미지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이유는, 키 때문이다. 무지는 반에서 가장 작고, 미지는 학교에서 가장 크다. 무지는 여자친구를 올려다 볼 용기가 없다. 

 여자친구를 올려다 보는 일이 왜 용기가 필요한 일일까. 언제부터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었을까. 사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너무나 기다려왔다. 키 작은 남자와 키 큰 여자의 사랑 이야기. 세상 모든 로맨스는 남자가 여자보다 키가 크다. 키가 비슷하거나 조금 작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남주의 키는 훌쩍 자란다. 여주는 어느새 자기를 내려다보는 남주에게 남자다움을 느낀다. 

 키 작은 남자와 키 큰 여자의 사랑이 어색하거나 용기가 필요한 일로 느껴지는 건 사람들의 인식 때문이다. 남자는 여자보다 조금이라도 크고, 여자는 남자보다 조금이라도 작은 것이 보통의 커플이라고 생각하는건, 영화나 드라마 같은 미디어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사랑을 할 때도, 정상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무지는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고 미지에게 묻는다. "넌 남자가 키 작아도 괜찮아?" 미지는 대답한다. "넌 상관없던데" 미지는 무지의 외적 조건이 중요하지 않았다. 미지는 남자친구의 외적 조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식을 무시할 수 있는 아이다.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서 자신만의 사랑을 할 수 있는 아이이다. 무지는 어찌 이런 사랑을 모른 척 할 수 있을까.

 『최악의 최애』는 사랑에 대한 기존의 정상 프레임을 무너뜨리는 이야기다. 첫 작품을 간단하게 소개했지만, 그 뒤의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다. 읽으면서 내가 가진 오해나 편견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스스로, 사랑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 또한 사랑 이야기에 대한 수 많은 고정 관념을 가진 사람에 불과했다. 사랑을 할 수 있는 두 인물들에 대한 이미지가 고정되어있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사랑에 대한 편견을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좀 더 자유로운 사랑을 마음 껏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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