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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비 Nov 12. 2024

#1 당신은 왜 결혼했나요?

20살, 교정 나무에 꽃봉오리가 솟아났다. 첫 봄에 얼굴을 내민 꽃만큼이나 수줍고 낯설었던 대학 새내기, 낯선 타지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은 신입생을 모집하는 동아리 홍보글로 왁자지껄했다. 나도 한 동아리에 가입했다. 모두에게 다정한 선배들이었지만 사람이 많아서 주로 같은 단과 대학이나 학과 별로 어울렸다. 같은 과의 선배가 딱 한 명 있었다. 선배와는 집으로 가는 길이 비슷해서 동아리 모임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종종 함께 걸어갔다. 이야기를 할수록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것저것 많은 일에 한 눈을 팔지 않고 자신과 가족을 챙기는 일에만 집중하는 사람인 듯했다.


그렇게 5년의 연애를 했다. 긴 연애 기간, 각자 어학연수를 다녀오느라 떨어져 있던 시간도, 자신의 진로에 매진하느라 서운함이 쌓여 헤어질 뻔한 순간들도 있었다. 더 이상 떨어져 있으면 이별을 선택할 것 같아, 헤어질 수 없어 결혼을 선택했다. 잘하고 싶은 일이 무수히 많았지만 그중에 가장 잘하고 싶었던 것도, 그러나 가장 어려웠던 일도 결혼 생활이었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결혼을 결정했던 게 성급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결혼 3개월 후, 예상보다 일찍 아이가 찾아왔다. 아이의 존재는 철 모르는 나에게도 소중하고 기쁜 일이었다.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막연한 다짐과 가정에 대한 이상만 있을 때, 우리는 벌써 가족의 모습을 그려가고 있었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부부가 되어야 한다는 걸 아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지만 부부 관계가 힘들었기에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는 편안한 엄마가 되기 힘들었다. 결혼 전, 남편에게 신뢰가 깨어지는 사건으로 인해 자주 흔들렸고, 남편이 다른 여자와 만나는 악몽에 시달렸다. 꿈에서 깨고 난 후에도 불안감이 쉬이 가라앉지 않아 두려움에 숨을 헐떡였다. '이 사람이 나와 끝까지 함께할 수 있을까.' 자주 의심하고 두려워했다. 그때는 이 모든 게 신뢰를 주지 못한 상대의 잘못이라고만 여겼다. 


부부 관계 치료 이론에서는 말한다. 우리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는 어린 시절 우리가 받았어야 하나 충분히 채워지지 않은 결핍을 채우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배우자를 선택한다.  배우자는 무의식적으로 나의 부모와 긍정적, 부정적 특성이 닮아 있어 익숙하게 끌리고 사랑에 빠진다. 슬프게도 배우자가 가진 부모와 비슷한 특성이 다시 미해결 나의 상처를 건드리는 역할하고, 어린 시절의 충족되지 않은 나의 미해결 과제는 부부 안에서 반복적으로 갈등의 원인이 된다. 


남편과의 상처는 치유되어야 하는 나의 상처의 뿌리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어머니와의 애착의 경험이었을까. 친구의 배신으로 어린 시절 따돌림 당했던 상처의 경험이었을까. 명확하지 않게 알 수는 없다. 설령 이 관계가 힘들어 남편과 관계를 끝낸다 하더라도 내게는 잘못이 없어야 했다. 그래야 아이에도 미안하지 않고,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볼 어느 날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 남편을 선택한 나에는 어떤 책임이 남아 있었걸까. 이 결혼이 힘들고 버거운 이유를 나는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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