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도 여름, 당시 촌구석에 위치한 회사를 다니면서 퇴근 후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근처 승마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말 타는 것에 동경은 있었다. 도리어 왜 그때까지 승마를 시작하지 않았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더 신기하다. 이유는 잘 알고 있지만. 그보다 몇 해 전 승마 배우고 싶어서 승마장 찾아 가본 적은 있었는데, 주말 본가에서 다니기에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승마장들은 뚜벅이가 다니기 험난했다. 운전을 못 해서. 그래서 동호회를 통해서 카풀해주시는 천사님들을 만나면서 드디어 말 등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1년 정도를 승마장 안에서 자세를 잡고 기술을 배웠다. 당시에는 말을 탄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고 재미있었다. 2015년 봄에 같은 동호회 사람들을 통해 '외승'이라는 것을 접했는데, 이는 말 그대로 승마장 밖에서 타는 승마이다. 아마 자전거나 트레킹, 캠핑 등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간혹 자연에서 떼로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았을 텐데, 그것이다. 자신의 말이나 승마장의 말을 빌려 말 수송차로 이용하여서 외승 할 지역으로 이동, 그다음 말을 타고 돌아다닌다. 또는 종종 특색 있는 외승지가 있는 승마장이 있다면 그들을 통해 서비스를 받는다. 이런 식으로 승마라는 취미를 확장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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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가을 센트럴 유럽, 체코와 오스트리아를 여행할 때였다. 그래도 당시에는 승마를 갓 배우고 나서 유럽으로 나온 터라, 말 덕질하겠노라 오스트리아에서는 스페인 승마학교 마장마술 공연도 예약해둔 상태였다. 여기까지가 당시의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말 덕질의 한계였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체코랑 오스트리아는 타인들이 좋다 좋다 해서 한 번 가본 여행지였지, 완전 내 취향의 나라는 아니다. 물론 재미는 있었지만, 추억하고 곱씹자니 애매한. 오히려 내 취향의 더 좋은 나라들을 많이 만나는 바람에 기억 저편으로 묻혀버린 곳이긴 한다. 체코에서는 프라하랑 체스키 크룸로프를, 그다음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오스트리아 할슈타트로 넘어가는 일정이었다.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1박을 하면서 있었는데 아기자기하지만 별 감흥 없던 이 동네에서 그러나 호스텔 액티비티 안내서에 쓰여있는 'horseback riding' 이란 글자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요즘이야 스마트폰의 발달로 구글 지도에 가고 싶은 위치 뾱뾱 찍어서 보고 다니지만, 이전만 하더라도 호스텔에서 준비해둔 지도에 호스트들이나 스태프들의 친절한 위치 설명 듣는 재미가 있었다. 그 호스텔에도 그런 지도가 있었고, 손수 그려진 지도 한 구석에 '승마'가 쓰여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승마를 한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이때 용기 내어 스태프를 통해서 예약을 해보았다.
23일에 했는지 24일에 했는지 예약을 한 시점은 기억이 안 나는데, 2015년 9월 24일 오전에 호스텔에서 불러준 택시를 타고 근처 승마장으로 갔다. 가격은 생각이 안 나는데 왕복 택시비보다 승마 비가 더 쌌던 것으로는 기억이 난다.
도착해서 헬멧을 받고, 준비된 말 위에 올랐다. 한국에서는 승마바지, 승마부츠, 승마 장갑, 헬멧 등을 갖춰 입고 탔는데, 여기서는 입고 간 그대로 운동화에 청바지 상태로 탔다. 장갑도 없었다. 한국에서는 경주 퇴역마 출신의 더러브렛 종만 탔는데, 여기 말은 그들보다는 더 다리가 튼튼하고 단단하게 생겼었다. 그저 새로운 문화, 신기한 마음에 말에 올라타고, [승마장 주인 - 나 - 승마를 배우는 현지 학생], 이런 순서로 셋이 들판으로 나갔다. 내 생각에는 당일 승마 레슨 받으러 온 학생 같은데, 외승 나간다고 하니까 뒤에서 말이 튀지 않게 도와주는 역할로 학생이 같이 나가준 거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당시 나는 구보를 막 배우던 시기의 사람이라 걱정하면서 말을 탔는데, 타보니 승마장 주변 들판을 평보와 속보로 한 시간 가량 한 바퀴 도는 승마 체험이었다. 그래도 여행지에서는 그저 지나가며 보던 풍경으로만 느껴졌던 체코 시골의 풍경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이런 곳도 있구나! 그리고 내가 여길 들어왔구나.
먹이 주는 줄 알고 다가 오더니 안 주니까 돌아가는 매정한 녀석들
내가 갔던 체코 시골 농장은 야트막한 구릉과 푸르른 초지로 되어 있었다. 이때는 제주도 외승도 가본 적도 없어서 더더욱 이러한 풍경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당시에는 휴대폰이나 사진기를 들고 타지 않았고 (들고 탈 여유도 없었고) 내려와서 말 방목지를 찍었는데, 사진으로는 어느 오름 초지 같기도. 그래도 말을 타고 다니면서 동네 사슴 떼가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 자연!
그렇게 문화 충격을 적지 않게 받은 1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승마장 주인이 다시 호스텔로 돌아갈 택시를 불러주는 사이, 나는 승마장을 둘러보았다. 승마장에는 다양한 종의 말들이 있었는데, 내가 탄 승마용 말뿐만 아니라 마차 끄는 말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뚠뚠 하게 생겨서 목, 몸통, 다리 모두 아주 튼튼한 소 같은 말이다.
점박이 무늬가 멋진 말
더러브렛한테서는 본 적 없는 신기한 점박이 무늬가 있는 말도 있었고 (더러브렛도 아랍종과 뭐들이 섞인 종인데 조상 중에 점박이는 없는지 모르겠다), 건초 더미에 파묻혀 푹신하게 쉬고 있는 고양이들도 있었다.
이윽고 택시가 왔고, 승마장 주인과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승마장으로 돌아와서도 알딸딸한 기분이었는데, 내가 해외에서 승마를 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처음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취득했을 때 그 대한 충격으로 6개월간 물 들어가는 꿈을 꿨는데, 이 해외에서의 승마 역시 그 정도였다. 이런 세상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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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나의 해외 승마 여행의 인트로 격인 이야기이다.
2015년 그다음 달 제주도 외승을 맛보고, 그다음 해에는 단체로 몽골을 가고, 또 홀로 승마를 위해 아일랜드와 포르투갈로 떠나면서 해외 외승에 더 빠져 들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2022년도 조지아도 다녀오고, 그 이후도 아마 나는 또 다른 나라로 말을 타러 돌아다니지 않을까.
이 승마장은 아직도 운영되고 있다. 호스텔은 영업 중지 상태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