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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없는 회사가 되기로 했습니다

똑똑해 보이는 단어 시스템, 그 뒤에 존재하는 나태함에 대하여

by 김원빈

"죄송하지만 이 회사는 시스템이 갖춰있지 않아 더이상 일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오랜 외식업 경헙 동안 많은 직원들이 이 말을 남기겨 퇴사를 한다. 사업 초창기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퇴사자의 메세지는 내게 비수로 날아와 꽂혔다. 퇴사의 모든 이유가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대표자의 무능력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시스템 부재라는 낙인이 찍힌 대표라는 자괴감은 꽤 오래갔다. 이후 모든 상황과 변수를 마주할 때 마다 온통 생각들은 시스템으로 수렴됐다. 모든게 망할 시스템 때문인 것 같았다.


시스템이라는 단어에 빈번하게 노출되니 어느 샌가 내 몸 한 켠에 고착된 느낌도 든다. 반복해서 딱지를 뗀 상처가 더이상 아프지 않듯이. 반복은 사람을 무뎌지게 한다. 시간이 흐르고 아팠던 부분이 아프지 않게 느껴질 때 즈음 흉터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그 사이 나를 괴롭힌 시스템은 해결 됐을까? 아쉽게도 여전히 숙제는 풀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성장하지 못했는가. 그건 또 아니다. 오해려 그때 생긴 흉터는 굳은 살이 되어 마주하는 작은 숙제드를 해결하는데 꽤나 유용한 보호막이 되기도 했다. 시스템을 위한 고민의 시간들 말이다.


시스템을 운운하고 퇴사한 직원들의 근황은 어땠을까. 유감스럽게도 야심찼던 퇴사 순간의 눈빛에 비해 그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느 현장들을 주기적으로 옮겨 다닌다는 이야기는 좁은 이바닥에서 쉽게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다. 그들은 여전히 퇴사를 위한 무기로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직원을 바보로 만드는 시스템의 구조


얼마 전 콩나물해장국 메뉴를 준비하면서 직원에게 반찬으로 쓸 오징어젓갈을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업소용 대왕오징어젓갈 키로당 10,000원. 그가 보고한 내용이다. 뭔가 이상하다. 분명 내가 알아본 단가는 6,500원인데 무려 3,000원이나 차이가 난다. 어떤 방법으로 오징어젓갈 제품을 조사했는지 직원에게 되물었다. 매장에서 거래하는 기존 종합 식자재 업체에 물어봤다고 한다. 내가 준 숙제를 다시 한 단계 건너 거래처에게 위임한 꼴이다. 일반 식자재와 달리 오징어젓갈 같은 특수재료는 제조사를 통해 직접 납품 받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 그런걸 유통업체를 통해 배송 받으면 당연히 가격이 비싸질 수 밖에. 거래처를 통하지 않고 인터넷 아니 핸드폰으로 쿠팡 정도만 검색해도 접할 수 있는 가벼운 정보들이 넘쳐난다. 이러한 정보는 사람의 생각이라는 사고 회로체계를 통해 가공과 정리 되면 양질의 자료가 된다. 비록 미완성 일지라도 대표는 자료를 원한다. 도대체 무엇이 직원의 경험해야 하는 사소한 문제해결을 가로막는지 답답했졌다. 부디 단순한 개인의 나태함이 아니길 바랬다.


직원의 말은 매장에서 대부분의 재료들을 특정 거래처를 통해 받아 왔기 때문에 당연히 그쪽으로 문의했다고 한다. 오징어젓갈 단가 조사라는 숙제를 내준 출제자의 의도 파악 보다는 기존 연습해온 풀이 방식에 익숙한 모양새다. 식자재 발주의 편의를 위해 거래처를 일원와한 구조가 생각의 성장을 가로 막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무뎌졌던 시스템이 준 흉터가 다시 욱신거렸다.


시스템에 대한 의미와 해석에 대해 단단히 착오한 느낌이 들었다. 어학사전에서는 시스템을 '필요한 기능을 위하여 관련 요소를 어떤 법칙에 따라 조합한 집합체' 으로 정의 한다. 나 역시 식자재 주문의 편의와 효율이라는 기능을 위해 주문 방식을 일원화했다. 거래처 통일이라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작은 시스템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시스템을 쫒다 정작 문제해결과 나아가 성장이라는 대목표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짜여진 시스템을 우선으로 하다 정작 직원을 바보로 만든 셈이다. 이와 같은 관점으로 바라보면 외식업 현장에는 온통 시스템으로 인한 부작용 투성이다.


일 잘 하는 척 변명의 무기가 되는 시스템


불황이 지속되면서 저녁장사 중심의 고깃집들은 저마다 점심 영업 전략을 찾기 위해 혈안이다. 나 역시 고깃집에서 점심특선 메뉴로 김치말이국수를 준비하게 됐다. 요즘 날씨가 워낙 더워 냉국수 키워드는 장기적으로 가져가도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국수와 함께 어울릴 메뉴로 떡갈비도 착안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조합니다. 불황에는 이렇게 새로운 것보단 이렇게 통하는 것들이 전략이 된다. 떡갈비는 워낙 기성품이 잘 나오는 편이고 실제로 많은 업장에서 제품을 단순 데워 판매하는 곳들이 많다. 배달음식만 봐도 리뷰 이벤트로 떡갈비를 주는 곳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것들이 은연중에 우리의 기대치를 낮춘다. 떡갈비처럼 친숙하지만 기대치가 없는 음식들이 있다. 밖에서 사먹었을 때 성공한 기억이 없는 것들. 이런 품목들을 발굴하고 기대치에 충족시키는 것이 틈새 공략이 되기도 한다.


손으로 만든 떡갈비 맛을 포기할 수 없어 자가 제조방식을 매장에 지시했다. 다행이도 담당 직원이 결정 의도에 흔쾌히 공감해주었다. 그리고 점심 영업을 개시한지 약 2주 남짓 지났다. 아쉽게도 반응은 저조했다. 상품력의 부재라기 보다 고깃집에서 점심 활성화라는 미션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고깃집처럼 저녁 소비로 고착된 고객을 점심으로 이끄는건 어쩌면 새로운 식당을 오픈하는 것과 비슷한 노고가 드는 프로젝트다. 이래서 첫 설계가 중요하다. 나중에 밀린 숙제를 하는 것들은 늘 시간과 비용이 두 배로 든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폭염주의보다. 그럴수록 도입한 김치말이국수(냉국수)와 떡갈비 아이템에 대한 확신은 단단해졌다. 아이템에 대한 확신히 있으니 초기 부진에 비해 점진적으로 나아질거라 판단한다. 그러던 중 매장에서 수십인분의 떡갈비를 폐기 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점심 메뉴 론칭 초기 바빠질 경우를 대비해서 미리 만들어 놓은 떡갈비였다. 프랩에 대한 공정은 분명 필요하나 필요 이상으로 떡갈비를 미리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필자는 매장 관리자에게 꽤 많은 권한을 위임하는 편이다. 그 안에는 바빠졌을 시 솔드아웃 칠 수 있는 권한도 포함된다. 이는 일시적으로 주문을 멈춤으로서 매장 호흡을 이어나가기 위함이다.


하지만 매장을 수년 째 담당하는 베테랑 관리자였던 그에게도 갓 구워낸 떡갈비로 느끼는 고객의 만족 보다는 바빠졌을 때를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이 더 우선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어설픈 시스템으로 인해 매장에서는 떡갈비의 퀄리티와 재고손실을 떠안았다. 이런 상황은 일종의 불안기제로부터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외식업에서 마주하는 요즘 팀원들은 특히 현장에서 부딪히는 돌발상황에 대해 앞서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 시스템을 먼저 갖추고 일을 시작하려 했다는 거창한 변명도 들은 적이 있다. 시스템이라는 단어는 부연을 꽤나 똑똑하게 보이도록 포장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외식업은 대개 장황한 언변 보다는 맷집있는 묵묵한 타입이 이기는 게김이 많다. 잘못 알고 있는 시스템을 본인의 부족을 포장하는 도구로 쓰기보다 직접 부딪혀 해결 능력을 키우는 팀원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알을 깨서 멀티플레이어로 성장하길 바라는 리더의 바람과 스스로 부품이 되기를 바라는 것 같은 팀원의 입장 사이의 괴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지만 이러나 저러나 맞아봐야 맷집이 커진다.


시스템의 늪에서 탈출하자


냉면 레시피를 개발하라고 하면 요즘 직원들은 냉면 육수 완제품부터 찾는다. 어느 새 부터 냉면 육수를 끓여보려는 노력과 시도는 사라진지 오래다. 시스템은 효율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며 인건비를 포함한 다양한 고정비와 직결된다. 시스템을 갖추고 일한다는 착각 속에서 완제품을 사용한 음식들이 많아지고 식당 메뉴들이 빠르게 획일화 되어간다. 매장 운영 난이도는 낮아지지만 고객의 만족도는 떨어지고 결국 매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인건비 상승이라는 불안으로 많은 식당에 테이블 오더 방식이 도입됐다. 많게는 한달 백만원이 넘는 월정료를 부담하면서 효율을 높이고자 했지만 물 달라는 고객의 요청에 테이블 오더 사용하시라는 퉁명스러운 직원의 대답으로 돌아오는 상황이 초래됐다. 고객과 직원 사이의 스킨십은 줄어들었고 고객의 만족도는 줄어 서비스에 대한 가치가 더욱 중요시 되는 시대가 왔다. 무엇보다 문제는 실질적인 인건비는 줄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스템은 근무자의 능률을 높이기 위한 촉매제 역할인데 오히려 서비스 마인드는 감소되고 시스템이 일을 덜어준다는 개념으로 오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한 시스템인을 구축하려 할까? 어쩌현 모두가 시스템이 늪에 빠져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시스템보다 추구해야 할 것


지난 달 관리자들을 하나 둘 불러 모아 엄포를 놓았다. 코로나 만큼 아니 그 이상의 매출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비상경영 때문이다. 전달 메세지의 주된 내용은 더이상 시스템을 갖추고 일한다는 뉘앙스의 태도는 금지한다는 것이었다. 어려운 시기 속에서 근무자의 업무 퍼포먼스를 좀더 면밀하게 보겠다는 의도다. 관리자들에게 위임했던 기존의 구조를 타파하고 작은 조직에서 환경에 빠르게 대응하고 생존하기 위한 수직구조로 개편하기 위함이다. 이를 단적으로 해석하자면 더 확실하게 일할 자신이 없으면 나가라 라는 무언의 메세지기도 하다. 대표자로서 마음이 쓰이는 상황이긴 하나 살아남지 못하면 모든 의미와 가치들은 사라진다. 서운함을 사도 어쩔수 없다.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결정임을. 훗날 이 뜻을 나눌 수있는 팀원들이 끝까지 남길 바라는 마음이다.


인건비 상승 이슈와 함께 외식업 인력난이 이어지고 있다. 당연히 인건비 아껴야 한다. 단, 시간제 근로자 마인드의 직원들에 한해서다. 외식업 현장을 떠도는 수 많은 현장 근로자들의 머릿속에는 대부분 시간제 근로자 마인드가 박혀있다. 사람들의 패턴을 단정짓길 조심스럽지만 경험을 통한 나름 근거 있는 확언이다. 시간 근로자 마인드의 팀원들은 외식업 특성상 하루종일 매장을 지켜야 한다. 그래서 시간당 시급이 얼마인지 계산하여 단순 장시간 노동에 비례한 실수령액에 만족해 한다. 근시안적인 관점의 틀안에 본인을 가두는 행위다. 이들은 더 좋은 시급을 주는 곳을 찾아 다니다 결국 갈 곳을 잃고 멈춰버릴 테니까.


근본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급여의 총량이 아닌 업무의 질적 향상이 기반되어야 한다. 최저 시급은 매년 오를거고 이들의 급여도 점진적으로 반영이 되겠지만 확실한건 시간제 마인드를 가진 자들은 그들이 만든 시스템 안에서 결국 스스로도 쉽게 대체 되며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 시간에 한가지 역할을 하는 노동이 아닌 다양한 역할을 할수 있고 프로젝트로서 바라보는 관점을 장착해야 한다. 리더로서 팀원들에게 늘 강조하는 덕목이기도 한다. 외식산업에서 직업적 성장 비전을 갖기 위해서는 멀티플레이어적 사고가 필요하다. 테이블 오더로 고객이 물을 요청하기 전에 빈 물병을 보고 먼저 가져다 주는 태도. 진부하지만 생각하며 일하는 마인드 속 근무 환경 속에서 양질의 시스템이 만들어 진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외식업에서 시스템은 생각하는 노동자들이 누릴 수 있는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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