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다가오고, 날씨가 점점 추워졌지만 키티의 보호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친구들이 고맙게도 유기동물 분양 사이트에도 글을 올려주고, 나 또한 SNS, 소셜마켓 홍보란 등등을 이용해 분양글을 올려보았지만 키티를 데려가겠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품종묘가 아닌 흔한 코숏이어서였을까? 키티의 개성 있는 외모 때문일까?(이미 정이 들어버린 나에게는 한없이 귀여울 따름이었지만…) 하지만 그 사이 키티는 무럭무럭 자라서 씩씩하고 똑똑한 개냥이가 되어 나의 마음을 빼앗아가 버렸다. 하치의 보호자가 쉽사리 나오지 않는 것이 걱정되었지만, 이 상황을원망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까. 단지 길고양이를 데려온 당사자는 나였고, 그래서 어떻게든 이 작은 고양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과 대립하는 나의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 고뇌했을 뿐이다. 한동안 이 문제로 부모님과도 실랑이를 했다. 부모님께서도 고양이는 키워본 적이 없거니와, 한 번에 동물을 두 마리나 기른 경험이 더더욱 없으셨기 때문에 생명을 하나 더, 그것도 고양이를 집에 데려온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으신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다 큰 딸이 새끼 고양이를 어디서 주워와서는 “고양이와 하쿠를 같이 키우려면 독립을 해야 하나? 내 앞가림하기도 힘든데 고양이와 하쿠를 어떻게 다 케어하지?”하면서 끙끙 앓고 있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으시기도 했다. 거의 3주에 걸친 실랑이 끝에 부모님과 나는 모종의 계약을 하고 키티를 집에 데려오게 되었고, 키티는 하치로 개명했다. 그런데 사실 이때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은 하쿠였다.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고양이가 와서 소외감을 느끼거나 서러움을 느끼면 어쩌지? 하치랑 잘 지내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쩌지? 내가 괜한 일을 벌여서 가족들 모두를 힘들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에 한동안 매우 우울해졌었다.
개와 고양이 합사 하기.
첫 만남 때 하쿠는 벽을 보고 벌벌 떨고, 하치는 있는 힘을 다해 하악질과 발길질을 해댔던 사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지라, 하치를 집에 데려올 때 가장 걱정한 포인트는 바로 이 부분이었다. 일단 이 고양이가 어떻게 해야 하쿠를 공격의 대상으로 느끼지 않을까? 또한 하쿠는 한 번 싫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까닭에 하치가 오고 나서도 바로 휭~하고 뒤돌아서는 하치 쪽은 쳐다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치가 있는 베란다 쪽을 경계하면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느라, 현관 앞에 가있는 하쿠를 보고 너무 마음이 짠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널리 알려진 개와 고양이의 합사 방법이다.
1. 개들은 자신보다 작은 사냥감을 쫓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문을 사용하여 서로 냄새로 인사를 시킨다.
2. 서로의 냄새에 익숙해질 즈음 대면을 시키기 시작하는데 이때 고양이가 도망갈 수 있는 높은 은신처를 마련하는 것이 좋고, 개는 리드 줄로 매어둔다.
3. 개에게 가족이 고양이를 아낀다는 것을 보여준다.
4. 서로 다른 공간에 물그릇과 밥그릇, 잠자리를 마련해 준다. 서로가 익숙해지면 한 공간에서 지낼 수 있게 한다.
보통의 경우 개가 고양이를 쫓는데, 우리 집의 경우 하쿠는 소심한 겁쟁이고, 하치는 똑똑하고 패기 넘치는 고양이라 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워하는 하쿠를 안고 베란다로 데려가 서로를 인사시켜주었다. 하치는 하악질을 하면서 하쿠에게 경고를 주었고, 하쿠는 빨리 이 공간을 탈출하고 싶어서 벽만 쳐다보았다.
다음은 이 둘을 관찰한 나의 일기이다.
1일 차.
쿠는 지난번 병원에서 하치를 본 이후로 하치 쪽은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집 나가려고 베란다로 자꾸 피신하는 걸 말리느라 힘들다. 피곤한 나는 곧 잠에 들었고, 하치는 밤새 방 안을 우다다 중이다.(밤에는 추워서 내 방에서 지내기로 했다. 하지만 길고양이는 야행성 동물이기 때문에 밤에 더 활동이 활발해진다.) 그런 하치가 무서운 하쿠는 누나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누나도, 집도 빼앗긴 채 밤새 안절부절못했다고 한다. 암담하다.
2일 차.
병원에서 뿅뿅이랑 두기(가명, 간호실장님 강아지들, 서로 각자 다른 집에서 지내다가 합사에 성공했다.) 이야기를 듣고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는스트레스를받아하다가 이제는 서로를 너무 필요로 한다는 것. 보호자가 없을 때는 서로를 의지한다는 것. 오늘도 퇴근 후 쿠와 치의 대면교육을 가졌는데, 조금 친해진 건지 하치가 살짝 옆으로 다가오자 쿠의 꼬리가 조금 살랑하고 흔들렸다. 그러나 갑자기 하악질을 하는 키티... 무안해 하는 하쿠. 과연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5일 차.
오늘은 드디어 하쿠랑 하치가 같은 방에서 잘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하치가 하쿠집을 탐내서 하쿠는 간이침대에서 이불에 폭 싸인채 잠이 들었고, 아직 야행성을 버리지 못한 하치는 12시가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물고기 인형이랑 신나게 뛰어놀고 있긴 하지만, 서로를 신경 쓰지 않는 단계까지는 온 것 같다. 감사한 일이다.
아니다. 하치는 하쿠가 간이침대에서 자고 있는지 몰랐을 뿐이다. 우다다 침대로 뛰어오르다 쿠를 밟아버리고 말았는데 깜짝 놀란 쿠가 잠에서 깨서 일어나 버렸다. 서로 눈이 마주치고 나서는 하치도 내심 놀라고 미안했는지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쿠는 결국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서 잠이 들었고 하치는 얼음처럼 가만히 있다가 결국 침대 위에서 골골 송을 부르더니 하품을 하기 시작한다.
쿠가 악몽을 꾸나보다. 자면서 잠꼬대로 멍! 멍! 하고 짖기 시작한다. 불쌍한 쿠.. 꿈에서도 하치가 괴롭히는 건가? 얼른 가서 토닥토닥해주니 이번엔 하치가 삐졌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하치 내일은 제발 하쿠에게 친절하게 대해줘!
11일 차.
안 아프게 때린다! 내가 출근할 동안 엄마가 하쿠와 하치를 위한 교육을 한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 교육이 효과가 있었나 보다. 서로 같이 있고, 노는 시간이 많아져서인지 하치와 하쿠가 서로를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다. 하치가 하쿠를 때릴 때도 지난번처럼 진심이 담긴 발톱이 아니라 솜방망이 같은 패드로 톡 하고 장난치면서 건드리는 정도이다. 엄마가 하쿠는 착한 강아지고 하치는 똑똑한 아기 고양이라고 잘 어울릴 듯하다고 하셨다.
그 물고기 내껀데!
14일 차.
집에 빨리 오고 싶어 진다. 하쿠와 하치는 이제 서로 잘 놀고 서로를 아껴주기 시작한다. 여전히 하치는 장난꾸러기라 이곳저곳 장난치고 다니는 걸 좋아하고, 하쿠는 때로는 그런 작은 고양이 때문에 불편하고 귀찮은 때가 많지만 이제 내가 없어도 심심해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연말이 가까워 어디 나가지 않고, 퇴근한 후에는 집에서 하쿠와 하치와 재즈음악을 틀어놓고 할 일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는데,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소중하다.
'결국 시간이 답이다.'
라기에는 내가 없을 때 하치가 하쿠를 때리지 않도록 교육해준 부모님 [하치가 하쿠를 때리려고 할 때마다 안돼! 하고 혼을 내셨고, 하쿠를 가족이 아낀다(보통은 반대의 상황이라고 하는데ㅠㅠ)는 것을 교육시키셨다]의 노고가 너무 크시다. 그리고 착한 하쿠와 똑똑한 하치에게 감사를!
하쿠 자?!왜 침대에서 안자고 혼자 밑에서 자 ㅠㅠ 하고 하치가 같이 자준다.사랑스러운 아가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