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취업실패는 입시실패보다 더 큰 상처로 남아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당시 생각하지도 못했고 이유를 생각해 볼 여유도 없었다. 2021년이 돼서야 제대로 회상해보는 그때지만 후회도 많고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바보 같았던 내 모습을 후배 취준생들은 겪지 않기를 바라며, 그때의 서랍을 다시 열어보았다.
취업준비의 가장 큰 무기는 스펙쌓기 보다는 멘탈관리라고 말하고 싶다. 스펙도 물론 중요하다. 더 많은 기회를 갖게 하고 합격의 가능성을 높여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업준비에서 진정한 승자는 '멘탈 갑'인 사람인 것 같다. 스펙보다 멘탈의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곧 나온다.
스물셋의 나는 유리멘탈이었다. 인생에서 실패해 본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취업준비에 있어서 만큼은 와르르 무너졌었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첫째, 연속된 불합격 통보에 의해 나의 자존감이 아주 박살이 났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알려주지도 않는 기업들의 불합격 통보에 처음에는 아쉬움, 다른 데 되겠지 했는데 또 불합격에 절망, 이것을 넘어 분노로 바뀌어 가고 있던 상태였고, 불합격 통보조차 하지 않았던 기업들의 갑질도 나에게는 너무 꼴불견이었다. 구직자들은 정보 우위에 있어 기업들보다 열세다. 이것을 악용하여 어떤 기업들은 자기네 입맛에 맞지 않는 지원자들에게는 답을 주지 않았다.
스펙도 나쁘지 않은 서울 4년제 사립대 졸예, 학점 4.3/4.5, 각종 자격증, TOEIC 950, 해외경험 모두 갖추었었다. 스스로 고스펙이라고 자신 있게 나를 판단했으나, 내가 지원한 기업들 중 나를 받아주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서류합격, 1, 2차 면접은 갔지만 결론적으로 최종면접에서 다 미끄려졌다. 수십 군데 지원한 곳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스펙관리가 중요하대서 남들 유럽 배낭여행 놀러 갈 때 난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갔고, 남들 학점관리 적당히 할 동안 난 악착같이 했는데, 그렇게 열심히 4년간 대학생활한 것의 결과가 취업실패라니.
불합격된 이유를 알아야 그걸 보완해서 다시 도전해보는데, 이유 조차 알 길이 없으니 같은 실수를 계속적으로 반복하여 도전을 했었을 테니 지칠 만도 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느낌이었다.
둘째, 취업준비는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도전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불합격하면 '다른 데' 가지 뭐. 그 다른 데가 존재하지 않는 상당히 고위험도의 도전이라는 것이다. 다른 데가 합격하지 않으면 합격할 때까지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자. 초6, 중3, 고3, 대(2~4) -> 대한민국에서 일반적으로 정규과정을 받은 학생들은 이와 같은 교육기간을 거친다. 예체능 분야나 특목고 진학을 목적에 둔 학생들은 초6, 중3에 대입 전 입시도전을 먼저 경험하기도 할 텐데, 대부분 고3 때 대입이라는 인생에서 큰 도전을 처음 한다. 1순위로 희망한 대입에 실패하면 2순위 3순위 대학을 진학하거나 대입재수라는 대안을 선택할 수도 있다. 1년 후 내 실력을 검증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있고 정답이 있는 수능시험이기에 열심히 준비하면 도전할 가치가 있다. 예중, 예고, 체고, 특목고도 입시 실패하면 인문계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하면 된다. '다른 데'가 있다. 그래서 입시실패가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지만, 대안이 있기에, 입시실패의 슬픔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인간은 어차피 망각의 동물이고,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기에, 다른 대안이 존재하면 합리화를 해서라도 그 슬픔은 자연스레 잊게 되어 있다.
그런데 취업실패는 완전히 다른 얘기다. 취업재수라는 표현 조차 없던 시절의 나는 그 어떤 다른 대안도 생각할 수 없었다. 중3 때 외고 입시 실패했지만,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이라는 '다른 데'가 있었다. 대입에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가고 싶었던 1순위 대학과 학과는 떨어졌지만 차선으로 2순위 대학에 합격해서 '다른 데'로 진학했다. 취업실패는 그 '다른 데'가 없었다.
재수해서 1년 후 내 실력을 다시 검증받을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도 아니다. 학기 종강은 다가오고, 난 졸업을 해야 했고, 아무런 대체채 조차 만들지 못한 채 그렇게 한 학기를 보냈다. 그냥 계속 이력서 넣는 것만이 맹목적인 목표였다. 그 당시 기조는 기졸업자들은 거의 채용 기회가 없는 시대적 분위기였기에 취업재수라는 말이 없었다. 졸업유예를 해서 어떻게든 졸예 신분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다수였던 시기였는데, 나는 내가 어디 한 군데는 되겠지 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결국 0승이었다. (나는 졸업과 동시에 내 자존심을 지키고자 도피를 했는데, 도피 이후의 삶은 또 다른 스토리이기에 향후 소개하도록 한다.)
셋째, 남들과의 비교다. 취준을 하다보면, 취업스터디, 또는 또래집단들과의 근황 공유를 통해 누가 어디 지원했고 누가 어떤 상태이고 등등을 듣게 된다. 취업준비는 혼자와의 싸움이라 불안한 심리를 이겨 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과의 소통을 갈망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혹시 나만 모르는 정보가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불안함에 더 그런 소통에 신경을 썼던 것 같다.
나와 같은 학부 출신 동기와 모 대기업 공채 최종면접에서 우연히 같은 조였다. 그 친구는 전공 지식을 묻는 질문에 답변을 실수했고 나는 무난하게 했는데, 결과는 그 친구가 붙고 나는 떨어졌다. 아직도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실수한 그 친구는 합격 사실을 확인하고 나에게 전화가 왔었다.
"OO야, 너 합격했지? 나 완전 면접 망했었잖아. 그런데 합격했어. 너 당연히 됐을 것 같아서 바로 전화했어. 우리 같이 입사할 수 있겠다."
혼자 들떠서 격양된 목소리로 나에게 '지 자랑'을 해대던 그 친구. 나는 그날 취업스터디를 하던 사람들과 함께 새벽 4시까지 술을 먹고 노래방에서 계속 울었다. 왜냐하면 그곳이 내가 기다리고 있었던 마지막 기업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차라리 같이 불합격했으면 충격이 덜 했으려나. 나보다 학점도 낮고, 상경계열 전공도 아닌 애가, 상경계열 직무면접에서 실수까지 한 애가 합격해 버리는 그 어처구니없는,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 상황이 나는 너무도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러나 결정권은 기업에 있었고, 그 기업은 끝내 나에게 불합격의 사유를 알려 주지 않았다.
자존감 박살
대체재 부재
타인과 비교
이것이 내가 취업실패의 아픔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이유라고 생각되지만, 이 모두 나의 잘못이다. 그때는 기업들 탓으로 돌렸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더 강한 정신력으로 그 상황들을 이겨내지 못한 나의 잘못이 더 큰 것 같다. 지금은 그때 수많은 실패의 맷집들로 멘탈이 강해졌지만, 그때 이 수준의 강한 멘탈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는 취업재수로 당당히 도전을 했었을 것이다.
진짜 별 일 아닌데, 난 그걸 너무 거창하고 큰 일이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일인 것은 맞지만, 실패한다고 해서 그렇게 슬퍼할 일도, 오랫동안 담아둘 일도 아닌데, 그때는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도피를 했었나 보다.
자존감이 박살 나지 않으려면, 타인과의 비교에서 상처 받지 않으려면, 모든 일 하나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스스로 동기부여해서 아주 단단한 심리적 방패를 장착해야 한다. 요즘은 동기부여 챌린지들도 많고, 좋은 글, 좋은 명언을 알려주는 인스타그램도 많다. 그러니 취준생들은 의도적으로라도 동기 부여되는 연습을 꾸준히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대체재가 없는 도전임을 미리 인지하고, 취업준비의 중장기 계획을 세울 것을 반드시 추천한다. 결정은 기업들이 하고, 어떤 기업이 언제 채용할 지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입사 희망하는 기업으로의 취업이 실패되었을 때, 될 때까지 취업재수를 할 것인지, 창업이나 다른 분야로 갈 것인지 등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미리 만들어 둘 것을 권장한다.
스펙이 아무리 좋은 사람도, 멘탈이 약하면, 스스로 포기하게 되고 자존감이 낮아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스펙 좋은 사람보다 멘탈 강한 사람이 더 멋있고 존경스럽다. 그런 사람은 뭐라도 할 사람이다.
#취준생만세
감성멘토 하얀언니
(사진출처 getty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