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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Oct 10. 2021

대학원생의 불확실에서 오는 불안을 다루는 법에 대한 글

내가 박사가 될 상인가?

2020 도쿄 올림픽은 장기화된 역병의 도래에 침체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해주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여자 배구가 크게 이슈가 되었는데,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결과에 대한 배구 선수들의 태도와, 그 경기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의 태도였다.


한일전에서 역전으로 듀스를 만들고, 우승을 하며 8강에 진출하고, 기적이라 부를 수 있는 터키전에서의 승리로 4강에 진출했다. 한 경기, 한 경기가 말 그대로 '하나도' 쉽지 않았다. 4강과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분위기가 넘어간 상황에서도 한점도 그냥 내주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 눈빛과 경기를 운영하는 움직임에서 보였다.


그리고 결과에 대해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가 없는 경기였다고.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그랬다. 최선을 다한 게 보여, 보는 우리도 후회가 없다고.  


나는 미신을 믿는 편이다. 과학을 전공하지만 사주 보러 다니는 걸 좋아하고, 관상을 궁금해한다. 특히 요즘엔 관상이 궁금한데, 관상을 잘 보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 질문을 꼭 하고 싶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영화 <관상> 스틸컷, 제작 주피터 필름, 출처 다음 영화


'내가 박사가 될 상인가?'


거짓말 조금 보태서 백 번 정도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미안합니다. 대부분 긍정적인 답을 해주었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 물어봤다.


대체 왜?


연구의 주도권을 가지는 연습을 하는 게 어렵고, 지도 교수님에 비해 한참을 못 미치는데 어떻게 같은 박사가 될 수 있을까 상상도 안되고, 사실 입에 풀칠을 할 정도의 벌이는 하며 살 수 있는데, 굳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돈과 마음, 체력, 시간을 낭비하나 싶고, 앞에서 언급한 모든 매몰비용과 기회비용을 지불하고서도 학위를 얻지 못하고, 또 학위를 얻더라도 박사가 넘쳐나는 시대에 도태될까 봐.


그러면 포기할래?라고 물으면 그건 또 싫다. 미련이 있는 것이다.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고 진절머리 나지 않는가! 누가 정답을 알려주면 좋겠는데,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니 같은 고민을 5년째 하게 됐다. 그리고 이제는 같은 고민을 하는 게 지겹기도 하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질문은 일의 효율을 떨어트리니, 끊어버리겠다고 고민을 시작했다. 고민을 그만하기 위해 고민을 하다니, INTJ 답다. 그리고 오늘, 이를 닦다가 깨달았다.


내가 최선을 다하면 되잖아?


이 말이, 너무 당연하고 뻔한 답인데, 처음 떠올렸을 때, 욕조안의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쳤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었다.


대학원을 다니며 연구 지도를 받다보면, 지도교수님께 혼나고, 깨지고, 박살 나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깨질 때마다 내가 제일 속상했던 건, 연구 결과에 대해 지적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 태도에 대해 지적을 받는 것이었다.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라고 하니까. 그러면 난 또 수긍을 하니까. 그리고 더 최선을 다하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으로 수면을 포기하는데, 다시 말하면, 내 마음과 몸을 갈아 넣는 것이다.


이때까지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최선을 다한 것을 내가 몰라준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아준다면? 이 이상으로 최선을 다 할 수 있어?라고 물었을 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러고 나서 지도교수님에게 태도에 대한 지적을 받는다면, 이제는 대답을 할 수 있을 거 같다.


'내가 박사가 될 상인가?'


'아닌가 봐요, 아니,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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