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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Feb 10. 2022

시간이라는 가치

끌려다니거나, 끌고 가거나

방금 샤워를 하며 떠오른 예전에 했던 생각들을 

오늘은 일기 대신 써보려 한다.



2019년 엑서터에 있는 Met office, 쉽게 말해

영국의 기상청에 출장 갔을 때의 썼던 일기다.


그 당시 지도 교수님의 몸은 하나인지라,

(물론 지금도 하나다.)

혼자 가서 발표를 하고 온 적이 있었는데

모든 게 서툴러서 아주 먼 곳으로 숙소를 잡았었다.

걸어서 40분 거리였던가.

덕분에 엑서터의 풍경은 다 보고 왔지만.


그날도 열심히 걸어서 오피스로 가고 있었다.

손목에 시계를 차고 있으니까,

출발하고 몇 분 정도 지났는지 확인해서

몇 분 남았겠거니, 하고 생각하면 되는데,


시계를 보고, 앱으로 확인했다.

당연히 앱에서 확인되는 남은 시간과

내가 계산한 시간은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계를 한 번 확인하고,

앱을 굳이 한 번 더 확인했었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거지.


'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


같은데, 맞는데, 내가 믿지를 않았다.

내가 계산한 시간을.

당연히 틀렸다고 생각한 거지.


객관적이라는 게 물론 선명해서 좋다.

하지만, 과유불급, 뭐든 지나치면 안 좋다고

주관도 중요한 법인데 

그 당시에 나는 내 주관이 거의 없었다.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실험실에서 석사학위를 공부할 때의 2년과

과학관에서 근무했던 2년을 비교했을 때,

후자는 시간도, 이벤트도 선명하다.

그런데 전자는 흐릿하고, 뭉뚱그려져 있다.

너무 직관적인가.

그런데 그런 느낌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형상을 표현하자면,

후자의 시간은 눈 위에 발자국이 하나하나 선명한데,

전자의 시간은 눈 위에 끌린 자국만 남아있는 거다.

끌려다닌 거지. 내가 시간에게.


그걸 알았을 때의 비참함이란.

맞다, 비참했다.

굉장히 슬펐던 기억이 난다.

나의 시간은 어디로 갔는지.


오늘 실험실 선후배와

' 나도 가끔 잠을 못 잔다, 그냥 불안해서.

어느 순간부턴 불면증이 무서운 게 아니라

디폴트인 것처럼 여겨지더라. 

그게 슬프다. '

라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도 

그래, 대학원생은 어쩔 수 없어. 

라고 말을 하는 것처럼


불안을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그 불안에 쫓겨 시간에 끌려다니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시간을 희생해서 나중에

비참한 기분을 느끼는 것보다는,

지금 조금 더 불안해하는 게 나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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