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당신에게 쓰는 편지
지나온 날들이 알록달록 풍요롭게 물들게 된 것은 당신 덕분이라고, 고맙다고 말하겠다.
그 말을 전하는 내 치아는 더 이상 맞물릴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겠지만.
세상에 떠도는 수많은 차가운 문장들 속, 기연치 따뜻함을 찾아내는 나에게,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왔던 그 어두운 말들은 사실이었노라,
결국은 알게 하고 마는 당신에게, 나는 기꺼이 감사의 인사를 건네겠다.
비웃음과, 기만을 가득 담은 덩어리를 건네받아,
그 손을 더럽혔던 조금 더 어린 시절의 나에게 고생했다고
위로를 건넬 줄 아는 어른이 되었으니까.
걱정 어린 손길로 손 위의 덩어리들을 툭툭 털어주고,
입으로 호호 불어주는 사람의 미온한 숨결이 심장까지 파고들어,
가장 차가운 것을 녹이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는 기회를 줬으니까.
깊숙한 곳 어딘가에는, 차갑고 날카로운 조각들을 안고 있으면서,
미지근한 숨결을 뱉어보겠다고 폐가 터져라 노력하는 나를
짠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참 재밌지 않나.
이제는 재미있어져 버린 당신의 이야기를 써도 되겠다.
오늘은 마음 깊이 좋아했던 가상의 당신에게 작별을 고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