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내가 성인 남성이라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살면서 내가 어른이 되었음을 새삼스럽게 느꼈던 적이 몇번 있었다. 그 첫번째는 의외로 먹는 것과 관련있다.
친가와 외가가 모두 바닷가 지방이다. 그렇다보니 명절이나 다른 특별한 날이면 생선회가 종종 올라온다. 노량진회와는 다르게 써는 법도 약간 투박하고 뼈와 살을 같이 써는 방식도 낯설지만 그만의 매력이 있는 생선회이다.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지만 불과 20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생선회는 제1의 혐오식품이었다.
그 비릿한 냄새에 기분 나쁜 식감, 그리고 입에 넣으면 퍼지는 날것 특유의 느낌이 싫었다. 평소에 먹는 조리된 음식은 뭔가 먹을 수 있도록 정돈이 된 느낌인데 반해, 날 생선은 사람이 먹으면 안 되는 것을 야만적 취향으로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어른들이 억지로 권하면 나는 못 이겨 한점 정도 입에 넣을 뿐이었다. 물론 초장으로 완전히 코팅을 해서였다.
그러던 어느날, 군대를 전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고, 포항에서 생선회가 올라온 터였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특유의 비린내가 확 끼쳤다. 그럴 때면 나는 하얀 생선회가 놓인 밥상에 눈길만 한번 주고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은 호기심이 생겼다. 식욕이 아닌 호기심이었다. 식욕은 내가 아는 맛에 작동하기 마련인데, 회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궁금해서 회 한점을 입에 넣었다. 숭어회였다. 초가을이었고, 살에 맛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날 입속에서 난리가 났던 그 고소함이 내 식성의 지평을 넓혔다. 평소에 먹던 고소함이 예능이나 드라마였다면, 그날 느낀 날것의 고소함은 쌩리얼 다큐멘터리 그 자체였다. 이런 은은하고 오묘한 맛이 이제껏 지구상에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고, 그걸 모르고 20년을 넘게 지냈다는 게 아까웠다. 한점 두점 계속 집어 먹었다. 먹을수록 매력이 더해졌고, 녀석과 친해질수록 묻히는 초장은 줄어들었다. 거의 한접시를 다 비울 때 즈음에는 초장 없이 생선살만 집어 먹었다.
그때 느꼈다. 내가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비록 그것이 생선회를 즐길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긴 하지만, 오랜 시간 지속되던 관성이나 경계 하나를 뛰어넘었다는 사실 자체는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주는 희열이 나를 설레게 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한 원동력은 바로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니 어느덧 맛이라는 영역에서 내가 포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져 있었다. 나도 이제 어른의 입맛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껴졌다.
얼마 전에 엄마와 TV를 같이 보았다. 무슨 국가 행사 중계였는데, 고등학생들이 관중으로 동원되어 앉아 있었다. 그 학생들은 엄마의 까마득한 후배들이었다. 엄마는 자막에 본인 모교의 이름이 뜨자 반가웠는지, "어이구야!"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칠십을 바라보는 사람이 자기 손녀뻘되는 학생들을 보고 그렇게 반가워하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는 문득 엄마의 얼굴에 오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늘진 얼굴이었다. 아쉬움 같기도 했고 어떤 종류의 후회 내지 억울함 같기도 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걸 보는 나 역시 기분이 가볍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내 알 것 같았다. 엄마는 그 학생들에게서 자신의 고등학생 시절을 보고 있는 게 확실했다.
엄마도 한때는 TV 속 학생들처럼 싱그러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인생의 가능성을 한가득 안고 있었을 것이고, 먹고살기 위한 싸움에서 그것을 하나씩 버려야만 할 때는 아깝고 한스러웠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저 분을 '엄마'라는 역할에만 가두어둔 탓에, 내가 행복하고 잘 되는 모습을 보여드릴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저 분도 본인이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고등학생이었을 텐데 말이다.
사람이 자기 부모의 인생에 대해서 연민을 느낄 때 한단계 성숙한다고 생각한다. 내 부모를 부모의 역할에서 해방시킬 때, 인간을 바라보는 눈이 한칸 넓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선회를 알게 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성장이다. 내가 받았던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가능하다. 쉬운 것 같아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오랜 시간 나는 그들로부터 받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또한번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엄마의 인생에 연민이 느껴진다. 나에게 주는 사랑의 잣대로만 평가했던 엄마의 인생을 이제야 조금 자유롭게 해드린 것 같다. 홀가분 하면서도 미안함이 느껴진다. 이제부터는 내 행복을 엄마의 행복으로 대충 넘겨짚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도 본인의 인생이 제일 소중한 평범한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