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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안 Aug 08. 2021

미안, 김밥

세상 놀고 먹는 존재가 공무원인  알지만, 일이 많을 때는 정말 많다.  믿어도 어쩔  없다. 정말이다. 특히 각종 외부감사, 예결산  일이 몰리는 시즌이 있는데, 그럴 때면 정말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다.  몇달이 나에게 그런 시간이었다. 일이 쌓여가는 속도를 내가 도저히 따라 잡을  없으니,  난국을 타계할  있는 방법은 시간을 늘리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잠을 줄이고,  다음은 쉬는 시간을 줄이다가, 나중에는  시간을 줄인다. 그때 가장 많이 애용하는 메뉴 김밥이다.


동료에게 부탁해서 김밥 한줄을 받아둔다. 그리고 남들 다 식사한 후 망중한을 즐길 때, 나는 한손으로 김밥 하나 집어 먹으며 마우스와 키보드를 두들긴다. 한참 하다가 보면 김밥이 있다는 게 생각난다. 그때 하나 더 집어 먹는다. 이런 식으로 간헐적 식사를 하다보면 점심시간이 다 끝나갈 즈음에는 김밥 한줄을 다 먹게 되고, 1시간 정도 분량의 일이 진행되어 있다.


최근에 3일 정도를 이렇게 밥을 먹었다. 점심 김밥, 저녁 김밥, 다음날 아침 안 먹고 다시 김밥, 이런 식으로 3일 정도 하니 정말 내가 김밥이 되어 버릴 것 같았다. 요즘 나오는 김밥이 다양해서 매번 돌려가며 먹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김밥은 김밥. 치즈김밥이 참치김밥 같고, 돈까스김밥도 이제 새롭지 않아 기본김밥으로 갔다가 다시 참치김밥으로 회귀하고. 끝없는 김밥의 뫼비우스 속에서 미각이 마비되어 버릴 것 같은 것도 힘들지만, 제일 힘든 건 심리적 상실감이다. 밥을 먹는 시간에 나는 밥을 때우고 있다는 그 기분이 너무 싫었다.




3일째 되던날, 이렇게는  살겠다 싶어 점심시간에 뛰쳐 나갔다. 오늘은 때려 잡는 한이 있어도 제대로  밥을 먹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나갔다. 일이야 쌓이겠지만, 정말 한번  먹었다가는  알러지가 생길  같았다. 그래서 고른 메뉴가 순두부찌개였다. 뭔가 뜨끈한 국물에  한공기를 먹어야 기운이   같았다. 칼칼한 국물에  한공기를 뚝딱 해치웠고, 점심시간에 이미 오늘 하루를 성공한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뿌듯한 마음으로 오후 근무를 하던 , 이상하게 허기가 밀려왔다. 점심도 든든하게 먹었는데 정체를   없는 허기였다. 처음에는 오랜만에 밥다운 밥을 먹으니 위가 신나서 열일 했나 싶었으나,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신날 메뉴도 아니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허기진  당연했다. 든든하게 먹었던 점심은 사실 매운 국물에 조그만 공기 하나 비운  전부였다. 순두부에 열량이 많을 리는 없고, 그저 매운 찌개 국물에 밥을 먹은 것이니 사실상 소금국물에  한공기 먹은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김밥이 새로워 보였다. 패스트푸드로 취급하지만  안에는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있다. 밥과 김밥, 단무지, , 우엉, 계란, 그리고 참치나 치즈같은 토핑까지. 펼쳐놓고 먹었다면 충실하다고  수도 있는 가짓수이다. 예전에 엄마가 집에서 김밥 만들  "간단한 메뉴"라고 했다가 등짝 스매싱을 맞은 기억이 있는데, 괜히 맞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가 들어가기에 그만큼 손이 많이 가는 메뉴이고, 엄마의 까다로운 '끼니의 기준' 통과할 정도로 내실이 있는 메뉴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한 후로 김밥을 가지고 '때운다'는 표현은 자제하려고 한다. 김밥에 대한 예우와 무한한 존경을 표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다만 김밥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인간관계에서도 김밥같은 사람들을 많이 봤다. 가까이 지내며 그 사람의 내면까지 알게되면 그 깊이와 단단함에 놀라게 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내가 보아온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을 모르는 이들에게 '때우는 김밥'같은 대접을 받는다. 내가 다 안타깝고 화가 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확신한다. 언젠가 알 수 없는 허기짐을 겪고 나면 그 사람이 지녔던 내면의 가치를 뒤늦게 알게 될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 그 사람이 곁에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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