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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안 May 02. 2021

좋은 야구감독과 좋은 상사

야구를 좋아하는 편이다. 요즘에는 바빠서 거의 못 보고 있지만, 내 기억에도 꽤 어릴 때부터 야구를 봤던 것 같다. 오랜 시간동안 야구를 즐겨온 사람의 안목으로 보건대, 야구는 분배의 스포츠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종목에 비해서 월등히 경기 시간이 길고, 그 긴 시간을 이닝으로 쪼개 진행하다보니 팀의 역량과 체력을 상황에 맞게 잘 나누어 투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긴 시간을 제대로 치르기도 전에 퍼지고 만다. 그리고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그 지점을 흔히 승부처라 한다.


나는 좋은 야구감독의 첫번째 역량은 승부처를 잘 보는 눈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야구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팀이 발휘할 수 있는 역량에는 한계가 있다. 시합의 승부를 결정지을 만한 중요한 지점을 잘 파악한 뒤, 최대한 효율적으로 힘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승부처가 아닌 지점에서는 과감하게 힘을 뺀다. 이걸 잘하는 감독이 좋은 감독이다. 마치 회사의 조직을 경영하는 것과 비슷하다. 야구감독은 다른 종목과 다르게 코치가 아닌 매니저라고 표현하는데, 이러한 면에서도 정말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조직생활 6년차에 비해 꽤 여러 유형의 리더를 만났다. 인사이동이 잦은 공직의 특성 덕분이다. 경험치가 쌓이면서 리더를 보는 나만의 관점도 어느정도 정립이 된 듯하다. 여러 유형이 있겠지만, 내가 보는 좋은 리더의 자질은 좋은 야구감독의 그것과 비슷하다. 다 고만고만한 직원들이 모여있는 부서에서 아무리 쥐어짜봐야 나올 수 있는 역량에는 한계가 있다. 나만 봐도 아무리 쪼아봐야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더이상의 양과 질을 기대할 수가 없다. 다른 직원들은 나보다야 다 뛰어난 사람들이지만, 그렇더라도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이라 한계란 분명히 있다.


괜찮은 리더일수록 이면지가 적게 나온다. 남아 버리는 역량이 없다는 얘기다. 일의 중요도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부서의 역량을 집중시켜야 하는 지점에만 쏟아붓는다. 그렇지 않은 일에는 여유를 준다. 보고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받지도 않는다. 그리고 '만약'을 위한 보고서나 자료도 지시하지 않는다. 만약 그 염려했던 '만약'과 마주한다면 본인의 개인기로 해결한다. 반면 어떤 리더는 만약의 만약에 만약까지 다 준비시킨다. 일 한번 치르고 나면 버려지는 종이가 포대로 나온다. 누구는 그런 리더를 두고 꼼꼼하다고 평하지만, 부서 전체가 금방 지치는 게 내 눈에는 확연히 보인다. 1회부터 9회까지 모든 순간에 전력투구를 지시하는 야구감독과 비슷하다.


예전에 경험했던 어떤 리더는 좋지 않은 야구감독의 끝판왕이었다. 누구나 스타일이 다 다른 것은 인정하지만, 조직원 누구에게도 납득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어떤 행사를 준비하는 중이었는데, 현수막의 콤마와 슬래시의 위치를 두고 수정하니 마니 하는 문제로 야근까지 한 일이 있다. 행사 전체로 봤을 때 중요도로는 하에 속하는 일이었다. 당시 담당이었던 직원과 맥도날드에서 저녁을 먹으며 정말 바스러지도록 그 상사 욕을 했다. 하지 않아도 될 야근과 먹지 않아도 될 저녁 빅맥이었다.


충실한 과정도 중요하다는 반론이 있을  있다. 맞는 얘기다. 충실한 과정, 나도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충실하다의 의미를 서로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모든   다루는 것은 불안한 것이지 충실한 것이 아니다. 사안의 경중과 핵심을   아는 안목이 있어야만 충실한 과정을 담보할  있다. 그러한 안목이 없는 것에서 오는 불안을 조직원들의 노동으로 만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쓰고 보니 나같이 좋지 않은 직원이 좋지 않은 리더를 말할 자격이 있나 싶다. 만약 그렇게 지적한다면...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이해하면 좋겠다. 앞으로도 여러 유형의 리더를 경험할 텐데, 명장은 아니더라도 명장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1회부터 주구장창 마운드 방문해서 일장연설 하는 감독은 정말 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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