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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안 Mar 08. 2021

공무원도 그냥 직업이에요

이카루스는 되지 마세요

나는 공직에서 일하고 있는 공무원이다. 모 지자체에서 일하고 있고 6년 차이다. 아직 연차가 길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대충의 분위기와 소위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남들보다 조금 늦게 들어온 편이다. 그래서 남들은 내가 빨리 진급 해야하는 사람처럼 알고 있지만, 다행히도(?) 난 그럴 마음이 없다. 애초부터 공직에 대해서 '직업' 이외에 어떠한 것도 기대하지 않고 들어왔고, 생계수단으로서의 지금의 직급도 그럭저럭 괜찮기 때문이다.


입사 초기였다. 공직박람회인가 하는 행사를 개최했는데 거기에 내가 우리 기관 대표로 참여하게 되었다. 할 일은 공무원 지망생 상담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온 2~3년차 공무원들이 부스에 죽 앉아서 벨을 누르면 띵동하고 번호가 뜨고, 그 번호에 해당하는 사람이 앞에 앉으면 이것저것 공직에 대해 상담해주는 식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공무원 시험의 속성과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지 '내가 했던 방식'을 묻고 답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날 5~6명 정도를 상대했던 것 같다. 대부분이 지금 노량진 같은 곳에서 시험을 준비하는 20대 중반의 학생들이었다. 노량진에서 듣기 힘든 이야기, 시험이라는 관문을 갓 통과한 사람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온 사람들이었다. 공무원 준비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의외로 현직을 만나기가 힘들다. 아는 공무원이 있으면 모를까, 시험 어떻게 준비하냐고 묻기 위해 현직을 따로 만날 수는 없다. 그래서 한 사람당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은데, 내 개인적으로는 살짝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시험준비야 당연히 물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누구 하나 공직의 속성과 자신이 거기에 맞는지에 대해서 고민한 흔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앞에 닥친 과제인 시험에 충실하되, 공무원도 직업인만큼 나에게 맞는 일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그런 고민 때문에 방황하는 시간이 꽤 길었고, 결국 30대 초반의 1년이라는 귀한 시간을 고민하는 데 썼다. 그런데도 왜 공무원이 됐냐고 묻는다면, 당시 내 상황에서 그것보다 괜찮은 생계수단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친구들(더 좋은 표현을 떠올리지 못해 죄송)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극악무도한 취업난 속에서 알바하며 자기 앞가림도 하고, 기어코 스펙을 만들어 취업에 성공하는 친구들을 보면, 내가 그들보다 10여년 먼저 태어난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멋진 것은 자기 삶에 대한 책임감과 그것을 과감히 실천하는 합리성이다. 아무리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이라도 내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이 서면 과감히 그만두고 다른 곳에서 방법을 모색하는 예를 많이 봤다. 유튜브에 수없이 떠있는 사례는 말할 것도 없고, 일적인 이유로 만났던 스타트업 종사자들에게서도 그런 것을 느꼈다. 내가 마음에 드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그 의지가 부럽고 대단하다.


그런데 유독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뭐랄까, 그냥 유니콘을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저 유니콘의 등에 타지 못했을 뿐이지, 저기에만 오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강한 확신 내지 맹목적인 믿음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날도 어떤 준비생에게 1년만에 사직서를 낸 내 동기 2명의 이야기를 하자, 마치 불가능한 것을 본 사람의 표정을 지었다. 만약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굴지의 기업에서 1년만에 사직을 했다면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자기랑 안 맞았나 보다'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냉정함과 합리성이 유독 공무원이란 직업 앞에서는 왜 무디어지는지 모르겠다.




어디가서 내 직업을 말하면 항상 듣는 말이 있다.

"칼퇴 하시겠네요"  "일 널널하죠?"  "연금은 얼마나 받아요?"

주로 이 직업이 가지고 있는 장점에 대한 막연한 추측과 함께 약간의 시샘을 섞어 던진 질문들이다. 그런데 그중 상당수는 오해이다. 칼퇴? 나 거의 매일 야근한다.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한다. 일이 널널? 그거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하는 일, 그리고 내 주변 직원들이 하는 일 결코 널널하지 않다. 양도 많고, 무엇보다 공직이다 보니 하나하나에 공적 책임이 따라붙는다. 연금? 나는 물론 요즘 들어온 직원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은퇴할 때 연금이 어딨겠어요" 여러 사회적 변화로 봤을 때, 지금처럼 연금이 지급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외에도 텍스트 한줄한줄에 히스테리컬하게 집착할 줄 알아야 하는 점, 어떠한 악성 민원에도 평정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 인적 구성의 변화가 크지 않고, 요즘 친구들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조직문화가 아직 살아있다는 점(+박봉) 등 감내해야할 점이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성이라는 장점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고 판단한다면 들어오면 된다. 그리고 세상이 어렵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 모양이다.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매년 올라간다. 비정상적인 경쟁률을 볼 때마다 난 생각한다. '저 중에 실망하고 떠날 사람은 또 몇 명일까' 들어온 자의 자만이라고 비난해도 좋다. 들어온 다음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라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최근에 젊은 공무원이 연달아 세상을 떠났다. 그 비보를 지켜보면서 계속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과연 저 친구들에게 공무원이란 무엇이었을까'

그냥 이루는 게 목적인 꿈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직업들과 마찬가지로 장단이 공존하는 직업이었을까. 부디 후자였으면 한다. 꽃길이 펼쳐지는 세상쯤으로 알고 들어온 것이었다면, 그 조직의 일원으로서 미안해 미칠 것 같기 때문이다. 부디 편히 잠들기를 바란다.


유능하고 똑똑한 친구들이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진심이다. 다만 태양을 좇는 이카루스가 아닌 합리성과 냉철함, 무엇보다 공직을 바라보는 현실적 시선을 가진 친구였으면 한다. 어서 들어와서 같이 지지고 볶고 하면서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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