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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안 Dec 05. 2021

내가 졌습니다

2005년에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했다. 2년이란 공백이 있었지만, 제집처럼 드나들던 학교이다 보니 적응이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학교도 친구도 교수님도 그대로였고, 심지어 학점도 예전과 변함이 없었다. 모든 것이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주식투자 동아리 모집' '수익률 맞히기 대회(상품 있음)' '경제적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부동산 세미나'


이런 현수막들이 캠퍼스를 온통 두르고 있었다. 분명 2 전만 하더라도 거의   없었던 현수막들이었는데, 그간 무슨 천지개벽이 있었던 건지 학교는 온통 돈을 좇는 이야기들 뿐이었다. 강의실로 가는 길에 현수막을 하나씩 읽다보면 내가 엄청 구닥다리처럼 느껴졌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영화 동아리, 역사학회, 소설 창작회 등등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대신 투자, 수익 따위의 타이틀을  모임이 동아리 방을 차지했다.




미디어에서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캠퍼스를 집어삼켰다'고 거창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가 정확히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냥 서로 노골적이 되어도 묵인하자는 거대한 합의가 생겨난 것 같았다. 돈 버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대학의 울타리 안에서 만큼은 잠시 미뤄두자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이 거추장스러운 가면 취급을 받고 있었다. 대학이고 나발이고, 어차피 벌어야 될 거 빨리 벌자. 이 합의에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듯 보였다.


솔직히 그 모든 것이 혐오스러웠다. 모든 배움에는 때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대학이 무엇을 배워야 할 때인지는 잘 모르지만, 최소한 그것이 돈버는 수단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20대 초중반의 나이는 그런 것을 익히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그런데도 세상은 졸업하는 순간까지도 내 바람과는 반대로 움직였고, 나는 더없이 얄팍한 지식과 세태에 대한 끝없는 반감을 안고 학교를 나서게 되었다. 돈을 좇는 멋없는 사람은 되지 말자. 잘돼봐야 졸부인 너희같은 사람들은 앞으로도 마음껏 혐오해주리라. 나도 모르는 사이, 이런 반감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져 있었다.




올해 언제즈음이었다. 초과 근무시간이 100시간 가까이 될 정도로 나는 말그대로 혹사 당하고 있었다. 초과근무 100시간이면 사실상 주중에 10시 이전에 들어간 적은 없고, 주말 하루는 무조건 나왔다는 이야기다. 그냥 일하는 기계로 살았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통장에 찍히는 돈을 보니 내가 하는 것이 빡센 알바가 아닐까 헷갈린다. 월급이 많으면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런 고민조차 할 기회가 없었다. 이유 없는 노동, 목적 없는 고통. 내 일상은 그렇게 점철되고 있었다.


뭐라도 질러 버려야 살 것 같았다. 그래서 홧김에 주식을 샀다. 미국 주식이 좋다길래 그냥 계좌 트는 것만 찾아서 있는 돈 다 넣었다. 종목은...그냥 좋아보이는 걸로 넣었다. 고통이 극에 달하면 판단이 가벼워지는 것이 맞나보다. 그돈 모으려면 몇달을 또 혹사 당해야 하는데, 그때는 마치 모든 것 다 던지고 떠나는 순례자의 마음이 되었던 것 같다. 이 고통을 견뎌야 하는 이유가 월급 통장 안에 없는 것이 확실하니 그것을 그냥 던진다 한들 뭐 큰일이야 있겠나 싶었다.


그 뒤로도 계속 비슷한 생활을 하다 얼마전에 계좌를 열어보니 근 석달치 월급이 불어나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단위를 헷갈렸나 싶었지만 다시 봐도 그돈이 맞았다. 물론 월급이 적어 남들 보기엔 놀랄만한 수익은 아니다. 그렇지만 마이너리그라도 안타를 치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다. 돈이 나 대신 나가 돈을 벌어온 것을 지켜보는 것은 내 생에 처음 겪어보는 신기한 일이다.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이렇게도 돈을 벌 수가 있다니. 애초부터 있었던 세상이고, 다른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에 눈 뜬 세상이었음에도 나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처럼 제도의 수혜를 입은 것이 마냥 기뻤다. 석달의 고통을 면제 받은 것 같아 너무 좋았다.




며칠 전에 주식투자 입문서를 샀다. 대학생 때부터 조금씩 투자를 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은 수십억 수익을 낸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자기가 주식을 경험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를 모두 알려주겠다고 표지에 써놨다. 그 말을 다 믿을 수야 없겠지만, 최소한 내 마음 속에서 처음 맞딱드린 그 녀석을 달랠 정도의 팁은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욕심이라는 녀석 말이다.


대학교에서 주식을 말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혐오했었는데, 근 20년이 흘러 나는 그 사람들이 쓴 책을 사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하나하나를 다 습득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들 만큼은 아니더라도 노동이 내 일상을 잡아먹는 꼴을 더이상 참지 않아도 될 만큼은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꼴에 마지막 자존심은 있는지, 난 돈이 좋은 게 아니라 돈을 통해 자유를 얻고 싶을 뿐이야라고 자위해보지만, 표지에서 활짝 웃고 있는 저자의 얼굴이 내게 말을 한다.


"그거 내가 이미 했던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20년의 싸움에서 난 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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