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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안 Feb 11. 2022

MZ 타령 좀 그만해

새로운 착취의 미사여구

약속 있냐고 묻는 말에 있다고 말했어야 했다. 저녁 먹고 가자길래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나섰더니 과장이 같이 간다. 뭔가 싸늘했다. 집에 밥이 없어 밖에서 때우고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너무 성급했던 것은 아닐까 싶은 와중에 정신 차리고 보니 내 앞에는 이미 매운탕이 끓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집에 쉽게 갈 수 있는 메뉴는 아니었다.


술잔이 분주히 움직였다. 사적모임 인원수 제한을 비껴간 무리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 대화에 끼고 싶지 않아 열심히 생선살만 발라내고 있는데 과장이 내 이름을 부른다.


"지안씨, MZ 세대니까 이번 일에 좋은 거 하나 내봐. MZ는 그래도 아이디어 좋잖아. 나 같은 사람은 나이 들어 그런 것도 안 나와. 아주 기대가 커"




저 한마디에 어쩜 내가 싫어하는 말만 골라서 채워놨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새로운 시도 따위는 인정하지도 않는 조직에서 아이디어라는 말도 우습지만, 나이가 들어 아이디어를 받는 입장이라면 받는 자세를 먼저 갖추어야 하는 거 아닌가. 평소 보고 받을 때 보면 황소고집이 따로 없다. 


기대한다는 말도 불편하다. 회사에서 듣는 저 말은 이상하게 순수하게 들리지 않는다. 네가 내놓는 결과물이 내 마음에 들어야 할 책임이 있으며, 너는 그것에 대해 부담을 가지고 일해야 할 것이다는 강요로 들린다. 너무 삐딱하다는 지적은 넣어두시라. 다 늘어놓을 수는 없어도 지금껏 내 추측이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정말 순수하게 나의 발전을 믿는다는 뜻에서 기대하는 사람은 불행히도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가장 싫은 말은 'MZ세대'다. 사전적으로는 실용적이고 소비에 친숙하며, 인터넷과 모바일 등 온라인 공간을 편안하게 느끼는 1981~2010년에 태어난 사람들을 뜻한다. 연령으로는 12세에서 41세까지의 사람들 모두를 아우른다. 그렇다. 서른살 차이 나는 사람들을 하나의 부류로 퉁치는 아주 살벌한 개념이다. 




나는 81년생이다. MZ세대의 맨 첫 줄이다. 저들의 개념대로라면 20살 친구들하고도 하나로 묶일 수 있는 동질감 내지 보편적인 세대의식을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몇 년 전에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보고서 꽤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요즘 친구들의 성의식이 서로 성인용품점을 당당히 가고, 방송에서 얼굴 내놓고 섹스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변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때 스무살들도 20대 중반을 넘기고 있다. 그런데 내가 지금의 20대 초반, 심지어 10대들과 똑같은 세대라고? 말도 안 된다. 


문제는 관리자들이 저 말을 자꾸 착취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점이다. 관리자들의 연령대가 보통 40대 후반 이상이다. MZ의 범위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그렇다 보니 10대부터 40대 초반까지, 자기보다 어린 전 세대를 MZ세대로 퉁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 있다. 그 안에서도 엄청나게 큰 세대차이가 있고, 무엇보다 세대론으로 아우를 수 없는 개인이라는 존재도 있을 텐데, 그냥 MZ로 묶은 다음 미디어에서 생산한 MZ의 이미지를 자꾸 강요한다. 감각적이고 주도적이며 변화에 민감하고 다양한 소통을 할 줄 아는 사람들 말이다. 그러나 인스타 안 하는 20대도 얼마든지 있고, 김광석에 빠진 10대도 봤다. MZ의 첫 줄인 나 역시 요즘 젊은 친구를 보면 신기해하는 아재에 불과하다. MZ세대 운운하며 자꾸 새로운 결과물을 강요하는 것이 착취로 느껴지는 이유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함께 가소로운 착취의 미사여구로 등재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저날 회식도 9시까지 꽉 채워 끝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진이 빠지는 것은 MZ도 별 수 없나 보다. 집에 가서 씻으니 잠이 쏟아졌다. 침대에 누워 아까 과장의 말에 대한 대답을 그제야 해본다.


"저는 MZ세대 안 할랍니다. 기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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