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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안 May 18. 2022

4년 자취에 대한 긴 소회

나의 독립은 동생의 독립과 함께 시작되었다. 가끔씩 서로의 감정이 부딪칠 때면 동생과 엄마는 격하게 싸웠는데, 4년 전 어느 날도 그런 일이 벌어졌었다. 현장을 보지 못해 어느 정도의 싸움이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동생이 무심하게 던지는 말에는 그날에 벼렸던 감정의 날이 아직 남아있었다. "지겨워. 더이상 엄마랑 못 살겠어"


그후 동생은 은행을 돌며 최대한 당길 수 있는 대출금을 마련했고, 자기가 가진 적은 돈과 합쳐 방을 구하러 다녔다. 프리랜서인 동생은 은행에서 제일 꺼리는 부류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과연 저 친구가 나갈 수 있는 방이 있을까 걱정되기도 했으나, 늘 그렇듯 동생은 자기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시켰다. 그렇게 해서 동생은 우리집보다 훨씬 번화하고 젊은 사람이 많은 동네의 반지하로 이사가게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엄마는 반지하가 웬말이냐 뜯어말렸겠지만, 딸이 독립을 결심하는데 본인도 한몫 한 것이 걸려서인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동생은 자기가 은행에서 당한 프리랜서로서의 설움을 무용담처럼 늘어 놓으며, '공무원인 오빠는 대출이 잘 나올 테니 더 좋은 데로 나가라'는 눈물 겨운 충고를 남기고서 부모의 집에서 완전히 짐을 뺐다. 

그렇게 전격적으로 시작한 동생의 독립 생활은 오래 지나지 않아 변화를 맞게 되었다. 같이 일하는 동업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과 살림을 합치게 된 것이다. 동생보다는 자본금이 많은 사람이었기에 동생은 6개월도 안 돼 반지하에서 2층 빌라로 초고속 주거신분 상승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계약 기간이 한참이나 남은 반지하를 두고 나에게 은밀한 제안을 하게 된다. "오빠도 나와서 한번 살아봐. 독립하고 싶어 했잖아. 내 방에서 살아보고 괜찮으면 오빠 명의로 돌리면 돼"


처음에는 계약 해지가 번거로워 나에게 처리를 떠넘기는 것으로 생각했다. 사실상 계약하자마자 나가는 것이니 집주인이 반길 리도 없고, 자기 대신 들어올 사람을 구하자니 번거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동생이 나에게 건넨 유혹을 쉽게 거절할 수는 없었다. 빠듯한 살림에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던 부모님은 심지어 엄청 보수적이기까지 해, 나와 동생은 집에 대한 좋은 기억이 별로 없었다. 당연히 돈을 벌면 이곳에서 탈출하는 게 지상목표였는데, 어찌됐든 동생은 그걸 먼저 이루었고 나에게도 기회가 온 것이었다. 내가 쓰던 물건을 늘 물려 쓰다시피 했던 동생은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의 공간을 나에게 물려주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밥그릇부터 쿠션까지 모든 살림살이가 동생의 취향으로 세팅되어 있는 반지하에 나는 옷 가방 두 개만 달랑 들고 들어가게 되었다. 내 인생 최초의 독립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시작이 생각만큼 순조롭지는 않았다. 살림에 대한 기본 상식이 없었던 나는 매 순간 귀엽지 않은 백치미를 발산했다. 하루는 아끼는 울 니트를 빨기 위해 근처 세탁소를 찾아보다가 세탁비가 아까워 그냥 세탁기에 넣고 돌린 적이 있다. 그동안 살면서 사람들이 울 소재를 왜 굳이 드라이 하고, 울을 빨기 위한 특수 세제가 왜 따로 있는지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세탁기에서 배냇저고리가 돼서 나온 옷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세탁기에 먼지 거름망을 청소하라는 경고등이 떠서 세탁기 바닥 쪽에 있는 뚜껑을 무심결에 휙 잡아 젖혔다가 온 바닥이 물바다가 된 적도 있고, 계란 껍질을 헹구지 않고 그냥 버리는 바람에 쓰레기통에서 지옥의 유황 냄새를 맡기도 했었다. 심지어는 자치구마다 쓰레기봉투가 다르다는 것도 모르고 옆 구의 봉투에다가 쓰레기를 채워 버리기도 했는데, 집 앞에 줄지어 있는 동일한 봉투 사이에 내 것만 디자인이 유독 튀어서 검색해 봤더니 구마다 봉투가 구분되어 있었다. 봉투를 새로 사 오면서 이건 구와 구의 경계에 집이 있기 때문이지 내가 무심하거나 무식해서는 아니라고 위로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실수야 시간이 해결해주지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반지하라는 환경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이었다. 정말 곰팡이는 눈만 돌리면 노란 꽃을 피워내며 화장실을 점령했다. 내 첫 독립의 성지가 포자 따위에 점령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매주 락스 소독까지 했지만 안타깝게도 포자는 손보다 빨랐다. 지운 면적보다 한뼘씩 더 꽃을 피워내는 통에 나는 매주 힘든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 공간에 대한 책임이라는 생각으로 매주 쓸고 닦는 나를 보며 친구는 '대학 새내기 같다'는 평을 하기도 했었다. 

벌레도 문제였다. 내 방은 좁쌀만 한 날파리들의 놀이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반지하 특성상 지하 오물 시설이 가까이 있는 탓에 벌레가 하수구를 통해 들어오는 것이었지만, 당시에 나는 그 모든 것이 미숙한 살림꾼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 줄 알았다. 어떻게든 음식물 쓰레기가 실내에 머물지 않도록 했고, 설거지는 당연히 재깍 처리했다. 좁아터진 공간에 혹시나 알을 까는 곳이 있을까 싶어 각종 살충제도 주기적으로 뿌렸다. 그러나 곰팡이와 마찬가지로 상황은 반전되지 않았다. 그저 애는 쓰고 있다는 안도감만 안고서 곰팡이와, 때로는 날파리와 동거 생활을 이어갔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4년이 흘렀다. 반지하방은 2년 6개월 만에 탈출했다. 같은 집 위층으로 이사한 탓에 크기나 구조가 바뀌지는 않았지만 전반적인 컨디션은 비교도 안 되게 나아졌다. 이제 곰팡이나 날파리는 기억도 안 난다. 그리고 또 하나 바뀐 것이 있다면 공간과 내가 만나는 방식이다. 


나는 사람 사이의 관계도 생로병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일수록 늘 한결같기를 바라지만 어디 세상이 그렇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쓰고 있는 가면의 두께는 얇아지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짜 모습으로 서로를 대하는 날이 필연적으로 온다. 낭만주의 관점에서야 그걸 '사랑이 식었다'라고 표현할지 모르겠으나, 관계의 자연스러운 변화 과정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그건 '관계가 성숙해졌다'라고 보는 것이 맞다. 새로 태어났을 때의 모습과 나이가 들어 성숙해진 다음의 모습이 다른 것은 당연하기에 관계가 처음 같지 않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생이 노로 이어진 것뿐이니까. 오히려 관계에 깃든 병을 제 때 해소하지 못하고 묵히다가 관계가 최후를 맞이하는 걸 더 주의해야 할 일이다. 


지난 4년 동안 자취하면서 인간과 공간의 관계도 생로병사의 사이클로 움직인다고 느꼈다. 처음 이 공간과 마주했을 때의 나를 생각해보면 여자친구를 처음 만난 남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 매 순간이 설레다가도 혹시나 내 잘못으로 한 귀퉁이가 뜯겨 온전한 형태를 망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런 마음으로 매번 쓸고 닦았고, 항상 최고의 컨디션으로 유지해야만 내 공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내가 힘들어도 네가 좋으면 됐어'같은 순애보나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같은 순수한 사랑은 금방 나를 지치게 만들었고, 머지않아 이런 관계가 아름다울지언정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취방이라는 공간과 나와의 관계가 생을 지나 성숙의 노로 접어들고 있음을 어느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일요일마다 락스 칠하고 치킨 피자 박스는 절대 들여놓지 않던 나는 이제 없다. 방이고 화장실이고 적당히 더러워질 때까지 놔두고 귀찮으면 한주 정도는 건너뛴다. 주말에 한가하게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고 느낀다면 청소 정도는 얼마든지 미룰 수 있다. 밥도 가끔은 배민으로 해결한다. 배달 박스가 집에 있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세탁은 수건을 제외하고는 거의 세탁소를 이용 중이다. 예전의 내 모습에 비하면 게으르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관계가 나에게 훨씬 편하고 앞으로도 지속할 수 있는 방식이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관계 맺음의 방식이 변한 것이고, 때문에 마음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 


큰 변수가 없다면 앞으로도 한동안 자취생활을 해야 한다. 아직도 혼자 살림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만족스러운 경우도 거의 없다. 나도 모르게 살림의 기준이 예전에 엄마가 해왔던 것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요리도 청소도 정리도 관리도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나는 언제까지고 초보의 딱지를 떼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더라도 '과연 이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은 더이상 들지 않는다. 내가 공간과 오래 함께 할 수 있는 적정선을 터득했고, 이러한 관계에서라면 오래 같이 지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자취 시작 후 주변에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결혼을 하려거든 자취 경험이 있는 사람과 해라. 그때는 살림을 안다는 의미에서 말했었지만, 이제는 다른 의미도 추가되었다. 자취를 훌륭하게 하는 사람은 공간과 잘 어울리는 법을 안다. 역시 자취 경험은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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