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6개월 반지하 생활기
본가에서 처음 독립해서 나온 곳이 동생이 살던 방이었다. 동생이 거기서 딱 6개월만 살고 동업자랑 살림을 합치는 바람에 빈방인 상태였고, 나는 말그대로 몸만 들어가면 되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 그런데 한가지 문제 아닌 문제라면 거기가 반지하 방이었다는 것이다.
우스개로 행인이 침을 뱉으면 방 안에 떨어진다고 하는데, 다행히도 나는 길에 접한 방은 아니었고 주택가 안에 폭 안기듯이 들어가 있는 위치였다. 때문에 사생활 노출이라든가 자동차 매연 같은 반지하의 고질적인 문제로부터는 자유로웠다. 다만 워낙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구조이다 보니 공기가 들어올 곳이 없었다. 운이 나빠 내 방으로 들어온 공기는 꼼짝없이 며칠을 묵은 뒤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서큘레이터를 사서 수시로 돌렸지만, 가소로운 가전제품 따위로는 역시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사시사철 눅진한 공기가 방안에 가득했고, 물티슈로 어디든 닦았다 하면 까맣게 묻어나왔다. 기생충이 개봉한 후에는 한동안 외출 직전에 옷 냄새를 맡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공간을 최대한의 컨디션으로 유지하기 위해 늘 애썼다. 내 첫 독립의 성지이자 '과연 네가 혼자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엄마의 의심을 뒤엎을 증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중에 가장 신경쓴 것이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이 더러우면 그 집은 그냥 더러운 집이 되기 때문이다.
조금 더러워진다 싶으면 쓸고닦고 했다. 락스도 뿌리고 어떻게든 환기도 시켰는데, 희한하게 곰팡이는 늘 생겨났다. 어떻게 피워내는지 모르는 들판의 야생화들처럼 잠깐 눈 돌리면 그 자리 그대로 생겨나 있었다. 그리고 꼭 색깔은 노란색이었다. 나도 처음보는 곰팡이었다. 약간 주황빛이 돌기도 했지만, 노란색에 더 가까웠고, 바닥부터 벽면까지 넓게 피어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걸 볼 때마다 내가 사는 곳이 일반적이지 않구나 느끼곤 했다.
반지하의 또다른 문제는 벌레다. 곰팡이처럼 생전 처음 보는 종과 조우하는 일은 별로 없다. 다 어디서 봐왔던 놈들이다. 그런데 그 양과 크기 면에서 압도적이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엄지 두마디 정도되는 바퀴를 본 적이 있고, 온 몸이 더듬이로 뒤덮힌 모양을 하고 있는 소위 돈벌레는 수도 없이 때려 죽였다. 그중 가장 문제는 초파리였다. 설거지도 제 때 하고 쓰레기도 쌓아두지 않는데, 어디서 오는지 항상 초파리 떼가 들끓었다. 공기가 안 통해 약도 뿌릴 수가 없어 모든 살생은 수작업으로 했고, 여기저기 널부러진 그들의 사체를 정리하는 것이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가끔 엉덩이를 맞대고 자기들끼리 짝짓기를 하며 날아다니는 초파리 쌍을 보면 나의 전투욕은 더 크게 치솟아 최후까지 따라가 때려 죽였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가 한여름의 어느날, 퇴근 후 돌아온 집안에서 자기들끼리 둥글게 기차놀이하고 난리가 난 초파리 떼들을 보면서 항복 선언을 했다. 쓸고닦고 때려잡고 별짓을 다해도 모든 것은 역부족이었다. 꼬우면 나가라며 시위하듯 곰팡이는 계속 피어났고 초파리 떼는 더 많아졌다. 그때 깨달았다. 반지하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다. 곰팡이, 먼지, 각종 벌레들이 기거하는 곳에 사람이 들어가 잠깐 빌붙어 살 뿐이다.
지금은 똑같은 건물의 3층으로 신분상승(?)을 했다. 아예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으나 집주인도 좋고 이사비용도 아낄 겸 같은 주택의 윗층으로 갔다. 물론 여기도 욕실에 가끔 곰팡이가 생긴다. 그러나 반지하에서 본 것과는 조금 다르다. 내가 게으름을 부린 구석에 조그맣게 '여기 닦아'라고 말하듯이 핀다. 그리고 색깔도 까만색이다. 내가 흔히 보아온 그 곰팡이 색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곰팡이를 보고 반가웠던 적이 있는가. 나는 그 곰팡이를 보며 드디어 내가 사람 사는 곳으로 왔구나 기뻐했다.
내가 살던 반지하 방에는 나보다 훨씬 어린 커플이 들어온 것 같다. 동거를 하는 것 같은데, 부디 '그들'과의 동거도 잘 했으면 좋겠다. 항상 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서로 잘 보듬으면서 잘 살았으면 한다.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 반지하는 주거 공간으로 활용하지 못 하게 하는 법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반지하 방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겨난지는 모르겠지만, 돈 없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버린 게 사실이다. 앞서 말했지만 그곳에 주인은 사람이 될 수 없다. 집주인에게만 빌리면 되지, 각종 미물들에게까지 신세를 져야하는 건 너무 억울하고 비참하다.
오늘 아침에도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너무 좋다. 반지하에서는 없는지도 몰랐던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역시 사람은 사람을 위한 곳에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