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외 노마스크가 허용되면서 길에서 입 맞추는 연인들을 자주 본다. 코로나 시국에서는 마스크를 내리는 것이 금기시되어서였는지는 몰라도 연인들의 데이트 모습도 뭔가 조신하고 엄숙했다. 그러나 이제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길에서 커피를 들고 시선을 서로에게 고정한 채 당기듯 입을 맞춘다. 그 유명한 '수병의 키스'가 연상된다. 전쟁이 끝났음을 알렸던 강렬한 키스처럼 그들의 몸짓도 나에게 지긋지긋한 역병이 물러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나는 여친이 없기 때문에 길에서 키스하기가 일상회복 리스트에 없다. 대신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직전 운 좋게 교토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혼자서 교토 전역을 입에 단내 나도록 걸어 다닌 나날이었다. 하루는 저녁에 너무 허기가 져서 시장통에서 눈에 보이는 아무 가게나 찾아갔었다. 무슨 메뉴가 주력인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맛이 보장되어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전에 몇몇 가게에서 일본의 그저그런 맛을 보았기에 불안감이 없진 않았으나 더 이상 허기 때문에 불편하고 싶지 않았다.
마침 문이 열리더니 식사를 마친 손님 두 명이 나왔다. 누가 봐도 한국인이었다. 두 사람은 문을 나서자마자 서로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중 한 명이 "존나 맛있다"라고 하자 다른 한 명은 말이 필요 없다는 의미인지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과장되게 끄덕였다. 미국인들의 fxxking처럼 한국인들이 진심에 과장을 섞어 던지는 '존나'라는 표현이 그렇게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내가 맛집을 우연히 찾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잠깐의 웨이팅 끝에 들어선 곳은 텐동집이었다. 정갈하게 담긴 텐동 한 그릇과 맥주 한 잔이 곧이어 나왔고, 첫 입을 베어 무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진실되게 "존나 맛있어"를 외치고 싶었다. 고소한 기름과 바삭한 튀김옷, 실한 재료가 섞여 별미를 자아냈다. 느끼해질 만하면 맥주가 들어와 충분히 완주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분명 한국의 텐동집 사장님들도 많이 참관하셨을 텐데, 이 맛을 구현하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얼마나 많이들 좌절했을까. 너무 맛있어서 별 쓸데없는 걱정이 들었다.
그 텐동집은 왕래가 완전히 자유로워지면 가장 먼저 찾아가고 싶다. 비행기 요금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지만 마음속 리스트에서 지우지 않고 항상 체크 표시를 해둘 생각이다. 다만 염려스러운 것은 코로나 시기 동안 교토의 모습이 많이 변했다는 소식 때문이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동네에서 관광객이 증발했으니, 마른 바닥 물고기 신세였을 것. 교토에 공실이 급격히 늘어났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본다. 바다 건너 남의 나라 음식점에 정을 주는 것이 조금 우습지만, 그곳에 두고 온 첫만남의 기억은 공실 바닥에 있지 않았으면 한다. 뜨거운 공기, 눅진한 기름기, 공간을 가득 메운 고소한 냄새, 모든 것이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쓰다 보니 코로나 기간에 갑자기 없어진 나의 맛집들이 생각난다. 나에게 청국장의 맛을 알려준 가게가 있다. 식객에도 나왔던 집이고 워낙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코로나 불황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청국장이 가장 생각나는 어느 추운 겨울, 글씨가 뜯겨나간 채 뼈대만 남아있는 간판을 보고 한동안 황망히 서있었다. 정말로 장사가 안 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사장님께 무슨 일이 생긴 건지, 폐업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문 닫기 직전까지 구수했던 청국장 맛으로 기억되고 있다. 겨울이 오면 또 생각날 것이다.
이외에도 숙성회가 끝내줬던 동대문 횟집, 주인아저씨의 자부심이 남달라서 그 폐업이 더욱 안타까웠던 파스타집, 오래된 역사 자체가 브랜드이자 맛이었던 순댓국집 등, 코로나가 쓸어간 내 기억과 애정들이 너무 많다. 어제 먹은 점심메뉴는 기억나지 않아도 저 집들을 다녀온 것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잊어먹지 않았었다. 그만큼 평범하지만은 않은 내 일상의 점들이었다. 아직도 아쉽다.
'코로나 이전으로'를 외치는 리오프닝의 시기가 왔다. 비행기도 다시 뜨고, 호텔도 다시 찬다. 길에는 한 풀듯 사람들이 넘친다. 그러나 아직 남의 일 같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저 가게 사장님들도 시류에 편승하시면 안 되려나. 미미한 경제주체인 나에게도 리오프닝의 온기가 전해지기 위해서는 그 방법뿐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