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페뷸러스> (2019)
*시사회에 다녀와서 작성한 리뷰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0260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를 해볼 거예요.” “좋아요와 구독, 댓글 부탁드려요!” 유투브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겐 너무 익숙한 대사들이다. 영화 <페뷸러스>는 로리(노에미 오파렐)가 인플루언서 클라라(줄리엣 고셀린)의 메이크업 튜토리얼 영상을 보며 눈두덩에 시퍼렇게 든 멍을 가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잡지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로리는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강하고, 실력도 갖춘 그야말로 ‘준비된 일꾼’이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SNS 인플루언서 클라라를 에디터로 고용하겠다는 편집장의 결정으로, 로리는 계약 연장에 실패하고 다시 취준생 신세가 된다.
2만 팔로워가 없다는 이유로 실업자 신세가 된 로리는 마찬가지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지하철 버스커 엘리(모우니아 자흐잠)와 함께 신세한탄을 하러 간 술집에서 우연히 클라라를 만난다. 술집 화장실에서 클라라와 찍은 셀카가 클라라의 SNS에 업로드 되면서 로리는 하루 아침에 수십 명의 팔로워를 얻게 된다. 생각도 못한 기회를 활용하기로 마음먹은 로리는 클라라의 촬영을 돕고, 자신이 근무했던 잡지사에 기고할 글을 편집해주면서 클라라와 우정을 쌓는다. 페미니스트 단체에서 활동하며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는 엘리에게는 성적으로 대상화된 여성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생산하는 클라라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클라라 역시 자신을 싫어하는 듯한 엘리를 불편해한다.
하지만 클라라, 로리, 엘리 셋이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면서, 로리와 엘리는 마냥 화려한 줄만 알았던 클라라의 삶에도 남에게 말 못할 고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활동을 비판하기만 하는 엘리를 이해하지 못했던 클라라도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겨드랑이 털을 보이며 여성의 아름답지 않을 권리를 말하는 엘리의 모습에 감명받는다. 영화가 전개되며 하고 있는 일도,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달랐던 세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결국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해피엔딩을 맞는다.
<페뷸러스>에 등장하는 세 명의 캐릭터는 정말 현실에 있을 법한, 이 시대에만 나올 수 있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다. 먼저 SNS 인플루언서 클라라의 화려한 외모와 옷차림, 과장된 말투, 언제 어디서든 휴대폰을 꺼내 영상을 찍고 보는 자세는 유투브를 가득 채운 ‘인플루언서’들의 일상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자연스럽지만 섹시해야 하고, 방금 일어났지만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클라라의 모습은 미디어가 보여주지 않는 SNS 스타의 고충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로리는 SNS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으나 전략적으로 SNS 스타가 되는 캐릭터다. 취업을 위해 2만 팔로워를 얻어야 한다는 설정은 허무맹랑한 것 같지만, 개인 컨텐츠가 스펙이 되고 SNS 계정이 포트폴리오가 되는 현대사회에서는 안될 것도 없다. 게다가 더 많은 팔로워를 얻기 위해서 대중들이 요구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스캔들을 만드는 로리의 모습은 더 많은 조회수를 얻기 위해 자극적인 썸네일과 제목을 만드는 유투브 크리에이터를 연상시킨다.
엘리는 미디어가 보여주는 여성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캐릭터다.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클라라와 로리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엘리는 대중들이 원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편집해서 올려야 하는 인플루언서의 삶을 지지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냥 자신이 추구하는 멋진 삶을 보여줄 뿐이다.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던 클라라와 엘리의 관계가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이 영화가 주는 재미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영화가 여성의 신체와 성적 욕망을 아주 자연스럽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엘리와 로리가 제모하는 모습이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모습은 있는 그대로의 여성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남성 중심의 시각으로, 남성의 주도로 전개되곤 했던 스킨십 장면도 이 영화에서는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말 그대로 ‘자기 주장이 강한’ 세 캐릭터와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가 갖는 강력한 힘을 직접적으로 담아낸 설정에 공감하며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영화가 끝나 있었다. 매일 새로운 컨텐츠가 범람하듯 쏟아져 나오고, 유행에 휘둘리기 쉬운 환경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자신의 개성을 잃지 않는 세 여성은 어떤 메시지를 던져 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