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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한 뇨뇨 Nov 09. 2021

배려하는 작은 행동과 말

입동이 지났다. 

아침 창문을 여니 습기를 먹은 공기가 가득했다. 곧 소나기라도 쏟아질 것 같다. 

몇 달째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있어 미루다 일주일 정도 여유가 생겼다. 

지난주 몸의 이상 증상이 생겨 외과를 찾았다. 

의사는 건조하게 왜 병원에 왔냐고 묻는다. 

" 여름부터 가슴에 이상이 있었는데 최근 들어 사이즈가 커지고 있어요"

" 검사 먼저 해 봅시다."

30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의사와 면담을 나눴다. 


종이 한 장을 쥐어준 조무사는

" 원무과에 수납하고 종이에 적힌 데로 검사하고 오세요"


수납 후 초음파실로 갔다. 

의사는  필요한 말만 물어보고는 건조한 손길로 초음파를 진행했다. 


다음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영상의학과로 향했다. 

방사선과의 직원은 접수증을 받고는 

" 가서 옷 갈아입으시고 기다리세요"


13년 동안 병원에서 근무했지만 검사를 앞두고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긴장은 어쩔 수 없었다. 

예전에 건강검진을 하러 오는 수검자 둘 중 100 % 가 혀를 차는 마의 유방암 검사. 

할머니들은 직설적이게

" 망할 것들 , 없는 젖도 나오게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당기고 누르는지 욕이 나온다 욕이 나와"

건강 검진 마지막 코스였던 내시경실에 오면 그렇게 욕을 해댔다. 


'말로만 듣던 그 엄청난 검사를 해야 하는 건가?'

나도 모르게 괴성을 지를 만큼 아팠다. 

사실 엄살이 심하기도 했지만 예상밖의 통증에 나는 이를 꽉 물었다.


"아~~ 악.. 너무 아파요. "

" 네. 좀 아픕니다. 40 넘으면 이제 2년마다 해야 하는 검산데 조금만 참으세요"


' 말이야 방귀야.. 그냥 좀 참으라니.. '


작은 공간에서 차가운 검사기계와 방사선사는 무지막지하게 나를 대한 후 5분만에 검사가 끝이 났다. 

검사를 마치고 외과로 돌아왔다. 

별 이상은 없지만 조직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정확한 확인은 해야 하는데 혹시라도 모르니 성형외과로 다시 가보라고 했다. 

흉터가 남을 수 있으니 외과보다는 성형외과 쪽이 나을거 같다고 했다. 


며칠 지나 외과에 예약증을 들고 아침 일찍 도착했다. 

문은 닫혀 있었다. 

한참을 지나니 병동 회진을 마친 의사는 휙 오더니 물을 확 닫고 들어 간다. 


' 아침에 뭐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나?"


만약 우리 아이가 저렇게 문 닫았다면 나는 바로 불러 야단을 쳤을것이다. 

 수차례 문을 휙 닫고 가는 그에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조무사는 내가 30분을 앉아 기다린 후에야  복도로 나왔다. 


" 왜 외과에서 진료 안 보시고 성형외과 오셨어요?"

" 외과에서 상처 생길 수 있어 성형외과로 다시 가보라고 예약해 주셨어요"


마스크 사이였지만 무표정함이 묻어났다. 자신의 과에 환자를 넘겨 탐탁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 네, 오래 기다리셔야 해요"

조무사 역시 문을 휙 닫고는 들어가 버린다. 

 

'왜 기다려야 하는지 이유라도 말해 줄 수 있지 않는가??'

문 앞에서 닫힌 문을 보고는 수많은 환자들이 언제 문이 열리나 , 언제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나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조금 보다 기다림이 지루해 미리 가져온 책을 읽었다. 


" 한번 들어가서 언제 진료 보는지 물어보자."

옆에 계시던 진료를 기다리는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가서 조무사에게 물어본다. 


" 언제 진료 봅니까? 우리 계속 기다리는데"

"알아요.  한참 기다려야 해요. 앉아 기다리세요"


윽.. 문 앞에서 한 시간을 넘게 기다리던 나의 인내에도 제동이 걸린다. 

막연히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한번 정도는 나와서 왜 기다려야 하는지 남을 배려한다면 정보라도 줄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아는 사람은 자기뿐인데.. 한 시간이 지나도 환자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매번 간호하는 간호사로만 살다 최근 며칠 사이 나는 진료를 보는 환자가 되어 여러 병원을 다니고 있다. 

큰 병이 오기 전에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고 점검하는 중이다. 

건강검진을 하고, 치과 치료를 보고. 

물 흐르듯 순조롭게 집행되는 개인 병원과는 달리 

대형병원에 오면 항상 뭔가 가슴이 고구마 먹은 듯 꽉 막히는 느낌이었다.



최근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매일 하나씩 본다. 

보면서도 저런 의사는 절대 없어. 판타지야.. 하며 남편에게 했던 말을 

진료 보고 오면서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의료진의 작은 행동, 표정, 말투 하나에도 환자들은 불안해하고 , 걱정에서 다시 안심이 되기도 한다. 

아직 우리나라 대형병원은 환자에게 충분한 여유를 갖고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할 만큼 직원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다. 따뜻하지 않다.. 

진료를 보는 환자 입장이 되고 보니 그 들의 작은 행동이 눈에 들어온다. 

기계처럼 사무적으로 일하는 직원들에게 온기가 없다.

내 몸과 가족을 맡기는 의료진에게 모든 촉각을 새우는 환자와 보호자. 

바쁜 업무에 무감각해지는 의료진과의 거리가 오늘따라 더 커 보이는 건 무거운 날씨 때문일까?


 오늘도 진료를 다 보지 못하고 또 며칠 뒤 다시 오라는 말을 듣고는 무거운 발걸음을 돌린다. 



'내일 수업에서는 이론을 가르치기 전에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기본을 먼저 가르쳐야겠다. 

학생들이 들으면 꼰대같으려나.. '

혼자 중얼거리며 병원 밖을 나왔다. 


 직원의 입장이 아닌 환자의 입장이 되어 보니 보이지 않는 것들이 다시 보인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환자의 불편함에 먼저 귀 기울이고 , 배려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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