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힘쓰는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영준 Oct 26. 2020

살아있음에 감사하자

위대한 사람의 죽음에 접하며

서점에 갔다가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만큼의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글이 없는 것 같아 그냥 나왔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문자로 각기 다른 이야기와 글을 썼지만, 동어반복처럼 느껴지는. 그런 점에서 하루키나 헤밍웨이 같은 사람은 대단하다. 말이 빈곤할 때, 말이 이어지는 지점을 찾기 힘들 때에도 기어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니까.

글뿐만 아니라 생각마저 위대한 하루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함재봉 전 연세대 교수의 '한국 사람 만들기'다. 조선 초기부터 말기까지 약 500년의 역사를 정신사로 훑는 책이다. 비중은 조선 전기사보다 후기 근현대사에 좀더 실려 있다. 사학자가 아닌 정치학자가 이렇게 성실하게 사료와 원전을 읽고 정리했다는 데 존경의 마음을 품게 된다. 멋있다. 비전공자로서 역사에 대한 글을 계속 써왔던 나로서도 많이 배운다.


500여년 정체성이 제조되어 온 한국인의 역사라는 것은 고군분투 그 자체다. 찬란한 기억이 꽤 있지만 피투성이의 이야기가 훨씬 많다. 비루먹고 궁벽한 자들의 에피소드가, 위대한 이들의 에피소드를 압도한다. 역사는 절대 의도된 전략과 방향으로 진화되어 오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 내다 보니 역사가 되었을 뿐이다.

함재봉(2018) 전 연세대 교수의 한국사람 만들기

오늘은 10.26이다. 한 시대를 열었던 인물이 비운의 죽음을 당하며 독재의 문을 닫았던 날이다. 한때 이 날을 탕탕절이라고 기념하자며 암살자와 이름이 똑같은 손님들에게 공짜로 탕요리를 베풀겠다던 방정맞은 식당 사장이 있었다. 그는 거짓으로 쌓은 산이 들통나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신세다. 참 얄궂다.


10.26보다 더 선명하게 부각되는 사실은 어제 한 세기를 만들었던 한 사람이 78살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생애를 마감한 것이다. 그를 가리켜 노조탄압, 정경유착의 대명사로 비판하던 이들이 있었고 지금도 많다. 호화찬란한 소비벽의 주인공으로 조명하며 자기네 상품 마케팅에 이용하던 이들도 있었다. 사람의 크기와 부피가 클 수록 이야기도 많고 시끄러운 법,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의 죽음 앞에서 묘한 니힐이 읽힌다. 다른 이들처럼 유언 하나 남기지 못했고 자신의 생애를 결산할 만한 기회도 없었기 때문일까. 어제오늘 언론에서 제공한 오비추어리(추도사)들은 모두 그가 살아있을 적 익숙하게 말하고 전했던 내용들이었다. 은둔의 경영자가 그만큼의 말을 베풀어서 읽는 사람 입장에선 다행일지 모르나, 별로 새로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꾼 인물이라는 사실 아닐까. 전국민의 3분의 1을 먹여살렸다는 형이하학적 진실 이외에도, 스마트폰이라는 것으로 인류가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과정에 그의 노력과 도전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업적과 성과를 향유하지 않고 계속해서 앞날만 보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어느순간 그의 삶이 내가 책이나 위키피디아 같은데서 보던 티센, 크루프, 카네기, 록펠러 같은 이들의 그것과 묘하게 매칭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위대한 사람이 맞지만 성자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건희는 성자는 아니지만 위대한 생애를 살다 간 인물이다. 그리고 한국인이 어떤 존재인지, 한국 문화란 어떤 것인지 기술로 온 세계에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물질문명 뿐 아니라 정신문명의 획을 그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건희(1942-2020)

위대한 자도 결국 단촐하게 간다는 사실, 어떤 역사상 인물도 죽음이라는 허무를 극복한 적은 없다는 점에서 또다른 많은 생각이 든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자. 위대한 자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점에도 감사하자, 그가 남겨준 독특한 유산을 딛고 새 삶을 또 살아갈 것임에도 감사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철혈재상과 김종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