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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Mar 10. 2024

저도 그래요.

불현듯 찾아온 봄날의 선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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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서 올해로 넘어오면서 하나 깜박한 게 있다면 바로 '달력'이다.


나는 연말이면 늘 마음에 드는 달력을 하나 골라 가장 좋아하는 벽에다 붙여 놓고 오래오래 보곤 했다. 고른다고는 하지만 으레 '원고지' 모양 달력을 사 왔기에 늘 가던 사이트에서 주문하기만 하면 끝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그만 깜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연말에 생각지도 못한 면접을 준비해야 했고, 그 와중에 두 나라로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이런저런 일들로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2월. 그사이 달력 자리는 내내 텅 비어 있었다. 지나가다 눈에 띄면 아! 달력 사야 되는데 하고 금세 잊고, 아! 달력! 하고 또 까먹기를 여러 날. 급기야는 빈 벽도 나쁘지 않다며 올해는 그냥 이대로 살까 고개를 끄덕인 순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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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우편함에 낯선 모양의 소포 하나가 삐죽이 튀어나와 있는 걸 발견했다. 얼른 집어 드니 발송처는 나의 첫 직장이었던 NGO 시민단체. 가끔 소식지를 보내거나 총회를 알리는 초청장이 오곤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거겠지 하며 무심히 뜯어보았다. 그런데! 안에 든 것은 내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바로 달력이었다. 


한글학교 어머님들께서 손수 쓰신 글씨와 그리신 그림으로 자체 제작한 달력은 작지만 단단했다. 생각지 못했던 선물이라 어안이 벙벙한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한 장 한 장 넘겨 보았다. 매달마다 예쁜 그림들이 가득했다. 무지개, 꽃, 동물, 나무...... 한가운데에는 몇 줄의 글귀가 꼬박꼬박 들어가 있어 마음이 괜스레 일렁였다. 그렇게 1월부터 12월까지, 나는 마치 올 1년을 미리 짐작이라도 해 보듯 경건한 마음으로 시간을 건넜다.

무지개, 꽃, 또박또박 글씨 그리고 새해

한참 달력을 들여다보다가 작은 집게를 찾아 가운데를 단단히 집어 빈자리에 걸었다. 일부러 자로 재 맞춘 듯 딱 들어맞았다.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서도 보며 나는 이미 지나가 버린 1월의 글귀를 여러 번 다시 읽었다.


멋지고 더 당당하게 살아갈 내 인생이 기대가 된다.


처음에는 글을 쓰신 어머니의 당찬 포부라고만 여겼다. 와, 어머니 역시 멋있으세요! 그렇게 말하는 내 목소리도 어쩐지 익숙하게 들려왔다. 상근활동가로 일할 때 주로 다문화가정과 이주노동자 지원 사업을 담당했지만 가끔은 한글학교에 투입되어 교사 노릇도 했다. 자원활동가들의 사정으로 펑크 난 수업을 메우는 이른바 대타 교사였다. 어머님들이 오시기 전에 책상을 닦고 물컵을 정리하고 칠판도 다시 한번 깨끗이 지운다. 부지런을 떨며 환기를 시켜 놓고 있노라면 한 분 두 분 환하게 웃으며 교실로 들어오셨다.


어매! 오늘은 우째 선생님이요?


겨우 스물다섯이었던 나를 깍듯이 선생님이라 불러 주시던 어머님들. 자리에 앉으시기가 무섭게 나를 불러 떡이며 과자, 쿠키를 쥐여 주시곤 했다. 이거 내가 오늘 아침에 요래요래 싸 온 거니께 뒀다가 드셔요. 은밀하게 전해지는 도시락 통에는 과일이 또 한가득이었다. 손사래를 쳐도 매번 푸짐하게 돌아오는 음식들은 어머님들의 기쁨이자 사랑이어서 아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어머님들과 한글 자모를 외고 목청껏 받아쓰기를 하고 말 그대로 울고 웃으며 한 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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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6년이 흐른 오늘 불현듯 도착한 달력에서 지나간 시절과 다가올 날들을 가만히 겹쳐 볼 수 있었다. 그러다 어떤 날 밑에 새겨진 'OOO 어머니 기일'이라는 글귀를 발견하면- 순식간에 가슴이 턱 막혔다. 너무 오래,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매일 아침 환하게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오시던 어머니도, 한 시절을 살갑게 마주 앉아 보냈던 이주노동자 삼촌들도 벌써 몇 분이나 세상을 떠나셨다. 떠나지 마세요, 부디 저랑 같이 남아서 살아가 주세요 라고 아무리 외쳐도 안 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 기별은 늘 이렇게 늦게 도착하고 말아서 내 마음속엔 부치지도 못할 편지만 가득 쌓여 간다.


마음을 좀 더 넓히며 살아야겠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편지들을 담아야 할지 모르니까.


내가 좋아하고 따랐던 사람들의 마지막 날들을 손가락으로 가만가만 문질러 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꿈에서 깨듯 번뜩 정신을 차리고 다시 지금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움을 품고, 나는 또 가야지. 살아서 나아가야지. 어느새 2월, 그리고 곧 3월이다.

저도 그래요, 어머니.

2월 내내 어머니께서 써 주신 글귀로 힘을 얻었다. 그래, 지금이 가장 좋은 날이다. 저도 그래요, 어머니. 지금이 가장 좋은 날 같아요. 어머니께서 그리신 새도 보고 꽃도 보면서 아침마다 파이팅을 외쳤다. 그렇게 3월로 넘어왔다. 사람의 마음이 꽃이란다. 꽃과 사람의 마음. 얼마나 예쁠까. 봄이고 꽃이고 봄꽃이고 사람이다. 모처럼 마음에 꽃이 피어나는 것 같다. 그동안 어둡고 습해서 꽃 따윈 단 한 송이도 뿌리내리지 못할 것 같았는데, 어머니께선 그렇지 않다고 하셨다. 사람의 마음도 꽃과 같다고 그 언젠가처럼 내 손을 보듬어 주시며 가만가만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것만 같았다.


나는 스물다섯에나 지금이나 어머님들의 체온 어린 말씀들로 살고 있구나. 마음에 자꾸만 파도가 쳤다. 아주 오래전에 떠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그 시간들은 내게 고요한 힘을 주며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어쩐지 크게 위안이 되는 하루였다. 그날 나는 여러 번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머니, 저도 지금이 가장 좋은 날 같아요.

저도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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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설거지를 하는데 부엌 쪽으로 비스듬하게 봄이 스며들었다. 고개를 돌려 밖을 보니 온통 봄볕이다. 쌀쌀한 바람 가운데서도 사람들의 옷차림은 가벼워져만 가고, 그 모습에서 봄을 느낀다. 꽃과 사람의 마음.


활짝 피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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