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끼적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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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마라톤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맥주 한 잔과 함께 피자를 먹었다. 오호, 치팅 데이인가요? 애시당초 식단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치면 날마다 치팅 데이랍니... 그냥 먹고 싶어서 먹었다. 무척 맛있었다.
한 이틀째까지는 허벅지에 근육통이 있었고 등은 아직도 좀 아프다. 달릴 때의 충격을 등이 다 흡수했나 보다. 마라톤 후유증 핑계로 한 이틀은 뒹굴거린 듯하다. 조카 율이가 내 소식을 듣고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완주 메달을 보여 달라고 해서 화면에다 비추어 주었더니 우와아악!! 엄마아!! 고모 메달 좀 보세요오!! 하며 동네방네 소문을 냈다. 이러다 집으로 구경 올 것 같다. 파리 올림픽에 나가는 국가대표라도 된 양 으쓱했다. 모처럼 좀 쓸모 있는 인간이 된 기분. 이렇듯 재미있는 일들을 벌이고 우당탕탕 사는 것만으로도 내 존재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라는 2,193,481번째 위안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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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수첩을 거의 다 썼다. 나는 형사 수첩처럼 생긴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며 이런저런 글들을 끼적인다. 대부분 낙서에 헛소리이지만 가끔 기억해 두고 싶은 문장들도 있어서 오늘은 여기에 몇 자 적어 보려 한다. 다 쓰고 나면 책장 구석에 박아 두기 일쑤여서 다시는 볼 일 없는 글들도 많기에. 수첩은 다이소에서 샀고, 제법 쓸 만해서 여러 권을 쟁여 두었다. 가죽처럼 생겼지만 아무래도 가짜인 듯. '레-자'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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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15(금)
습관이란 얼마나 바꾸기 어려운가. 아침에 일어나면 책부터 보자 해도 자연스럽게 스마트폰부터 들게 된다. 그럼 1시간이 뚝딱이다. 읽고 쓰는 시간을 확보하지 않으면 모두 다 헛것이다. 가열차게 읽고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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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18(월)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을 알고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는 사실만큼 위안이 되면서 절망스러운 것도 없다. 우리 모두는 그냥 각자 평행선을 달리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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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23(토)
이해가 안 되어도 곁을 지킬 수는 있다. 꼭 이해가 되어야만 사랑할 수 있는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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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24(일)
부재(不在)가 존재를 압도한다.
사라짐으로써 완벽히 존재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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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 1(월)
할 수 있는 것을 하려는 노력.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고 하루에 하나만을 생각하자. 이번 生에 주어진 일들을 하나씩 묵묵히 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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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 20(토)
작품에 꼭 의식화가 들어가야 할까? 주제 의식에 녹아 있는 서사들이 잘 어우러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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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 25(목)
善의 편에 서서 죽는 날까지 살다 가자. 그것이 나의 사명이자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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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2. 18(일)
모든 길이 다 이해가 되고 설득이 돼서 걸어가는 사람은 없다. 일상 속에서 시간을 지나고 버티어 내는 것. 견디는 것. 무너지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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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3. 20(수)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될까?
그건 아마도 보고 싶지 않은 풍경을 봐야만 할 때.
괴로운 상황을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설 때.
그때 바로 배움이 시작되고 우리는 성장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데미안>을 재독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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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쓰지도 않은 것 같은데 수첩이 끝나 간다. 다음 번 수첩은 이번 것과 모양은 똑같고 색깔만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짙은 청색. 내일은 아침부터 소설 합평이 있고 이 기록이 끝나면 작품을 읽어야 한다. 내 차례는 아니지만, 어제 내내 고쳐 쓴 플롯을 들고 가 보려 한다. 열심히 또 달려 봐야지.
오늘은 강의가 있어 멀리 다녀왔다. 대학생 친구들과 <데미안>을 읽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제나처럼 기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여전히, 느리고 단순한 템포로 살고 있다. 언제까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좋은 사람들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며 살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겠다.
마치 오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