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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Mar 22. 2024

단상 기록_수첩에서

몇 가지 끼적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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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마라톤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맥주 한 잔과 함께 피자를 먹었다. 오호, 치팅 데이인가요? 애시당초 식단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치면 날마다 치팅 데이랍니... 그냥 먹고 싶어서 먹었다. 무척 맛있었다.


한 이틀째까지는 허벅지에 근육통이 있었고 등은 아직도 좀 아프다. 달릴 때의 충격을 등이 다 흡수했나 보다. 마라톤 후유증 핑계로 한 이틀은 뒹굴거린 듯하다. 조카 율이가 내 소식을 듣고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완주 메달을 보여 달라고 해서 화면에다 비추어 주었더니 우와아악!! 엄마아!! 고모 메달 좀 보세요오!! 하며 동네방네 소문을 냈다. 이러다 집으로 구경 올 것 같다. 파리 올림픽에 나가는 국가대표라도 된 양 으쓱했다. 모처럼 좀 쓸모 있는 인간이 된 기분. 이렇듯 재미있는 일들을 벌이고 우당탕탕 사는 것만으로도 내 존재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라는 2,193,481번째 위안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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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수첩을 거의 다 썼다. 나는 형사 수첩처럼 생긴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며 이런저런 글들을 끼적인다. 대부분 낙서에 헛소리이지만 가끔 기억해 두고 싶은 문장들도 있어서 오늘은 여기에 몇 자 적어 보려 한다. 다 쓰고 나면 책장 구석에 박아 두기 일쑤여서 다시는 볼 일 없는 글들도 많기에. 수첩은 다이소에서 샀고, 제법 쓸 만해서 여러 권을 쟁여 두었다. 가죽처럼 생겼지만 아무래도 가짜인 듯. '레-자'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대략 이런 느낌의 수첩, 이런 느낌의 끼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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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15(금)

습관이란 얼마나 바꾸기 어려운가. 아침에 일어나면 책부터 보자 해도 자연스럽게 스마트폰부터 들게 된다. 그럼 1시간이 뚝딱이다. 읽고 쓰는 시간을 확보하지 않으면 모두 다 헛것이다. 가열차게 읽고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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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18(월)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을 알고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는 사실만큼 위안이 되면서 절망스러운 것도 없다. 우리 모두는 그냥 각자 평행선을 달리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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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23(토)

이해가 안 되어도 곁을 지킬 수는 있다. 꼭 이해가 되어야만 사랑할 수 있는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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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24(일)

부재(不在)가 존재를 압도한다.

사라짐으로써 완벽히 존재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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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 1(월)

할 수 있는 것을 하려는 노력.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고 하루에 하나만을 생각하자. 이번 生에 주어진 일들을 하나씩 묵묵히 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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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 20(토)

작품에 꼭 의식화가 들어가야 할까? 주제 의식에 녹아 있는 서사들이 잘 어우러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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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 25(목)

善의 편에 서서 죽는 날까지 살다 가자. 그것이 나의 사명이자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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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2. 18(일)

모든 길이 다 이해가 되고 설득이 돼서 걸어가는 사람은 없다. 일상 속에서 시간을 지나고 버티어 내는 것. 견디는 것. 무너지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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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3. 20(수)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될까?

그건 아마도 보고 싶지 않은 풍경을 봐야만 할 때.

괴로운 상황을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설 때.

그때 바로 배움이 시작되고 우리는 성장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데미안>을 재독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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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쓰지도 않은 것 같은데 수첩이 끝나 간다. 다음 번 수첩은 이번 것과 모양은 똑같고 색깔만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짙은 청색. 내일은 아침부터 소설 합평이 있고 이 기록이 끝나면 작품을 읽어야 한다. 내 차례는 아니지만, 어제 내내 고쳐 쓴 플롯을 들고 가 보려 한다. 열심히 또 달려 봐야지.


오늘은 강의가 있어 멀리 다녀왔다. 대학생 친구들과 <데미안>을 읽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제나처럼 기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여전히, 느리고 단순한 템포로 살고 있다. 언제까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좋은 사람들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며 살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겠다.


마치 오늘처럼.


그리고 기록 하나. 언제였는지도 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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