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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Apr 29. 2024

아카시아 추억

4월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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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끝나간다. 거짓말처럼 찾아왔던 4월도 5월 앞에서는 순순히 물러나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어 보인다. 여름은 벌써 기웃거리며 틈을 엿보는 듯하다. 5월을 건너뛰고 6월이 되면 어떨까? 오해는 없길. 5월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심지어 생일도 5월에 있다. 그저, 여름이 좋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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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하니, 문득 생각나는 일화.


내 돌잔치를 앞두고 마침 아카시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고 한다. 표현은 서툴지만 돌이켜 보면 낭만적이었던 큰아빠가 내 돌잔치에 쓰라며 아카시아꽃으로 한 다발을 만들어 오셨다. 그래서 내 돌잔치 사진 한쪽에는 아카시아 꽃다발이 함께 찍혀 있다.


작은 고모는 그걸 기억하시고 해마다 아카시아 필 무렵이 되면 전화를 주셨다. 정확히 날짜를 기억하시지는 못해도 '얘, 아카시아가 피어서 전화했어. 요맘때 네 생일이지?'라며. 그러면 나는 쑥스러운 마음에 '예에' 하며 괜히 뒷머리를 긁적였다.


큰아빠는 아카시아꽃을 건네며 엄마한테 투박한 어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제 아카시아꽃을 보면, 애기 생일이 두고두고 생각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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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큰아빠를 좀 무서워했다. 옛날 분들 중 왜 그런 분들 있지 않으신가. 말씀을 호통처럼 하시는 분들. 나에게는 큰아빠의 말씀이 그랬다. '와라라락' 쏟아지는 호통 같았다. 언젠가 서울 버스가 신기해 창밖으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가 대번에 벼락이 떨어졌다.


야!! 너 큰일 나!!! 목 날아간다!!!!!


찔끔해서 고개를 집어넣고 잔뜩 주눅 든 채 큰아빠를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아니, 쓰고 보니 아빠랑 너무 똑같...) 표현이 부족한 사람들일수록, 다 꺼내어 보이지 못한 깊은 속내가 쌓여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돌 때, 나를 안고 찍은 사진 속에서 큰아빠는 나를 내려다보느라 고개를 살짝 비튼 채로 측면이 찍혔다. 잘 안 보이지만,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것으로 보아 웃고 계심이 틀림없다.


큰아빠는 2011년 가을에 떠나셨다.       


올해도 아카시아가 피겠지. 먼 곳에서도 이맘때가 되면 태주 생일이려나 하실까. 나는 훅- 하고 달큰한 향기가 몰려오면, 이제 여름이려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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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한 주가 지나고 다시 월요일이 되었다. 미뤄 두었던 일들을 차분히 해 나간 한 주였다. 기록해 둘 겸 아래에 쓰면-


- 게속해서, 소설을 썼다.

-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를 했다.

- 영화 <크레센도>를 보았다.  

- 지혜 작가님의 낭독회에 다녀왔다.

- 건강검진을 했다.

- 독서모임에서 <오늘날 혁명은 왜 불가능한가>와 <외로움의 습격>을 읽었다.

-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았다.


먼저, 소설은 이제 그냥 '쓰는 중'이다. 이륙한 비행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고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는 데 집중하는 것. 무사히 착륙할 수 있기를 바란다.


헬스장이 이사를 한다. 변화를 좋아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나는 재등록을 잠시 후회했다. 하지만 더 좋아진다고 하니 믿고 더 열심히 다녀 보자. 주 3회를 주 5회로 늘려야겠다. 어제 지수가 주 2회 달리기 코칭을 받기로 했다고 전했다. 11월이 먼 것 같지만 또 금방이겠지. 나도 러닝 크루를 찾아봐야겠다. 달려야지. 여름 내내.  


영화 <크레센도>는 무척 멋지고 아름다운 영화였다. 책이었다면 여러 군데 밑줄을 그었을 것이다. 집중해 보았고 여러 인물의 말들에서 큰 도전과 위안을 동시에 받았다.


지혜 작가님의 낭독회는 정말 한 편의 영화 속을 거닐다 온 듯 애틋하고 아름다웠다. 신간 <인사는 잠깐인데 우리는 오래 헤어진다>를 읽고 이에 대한 글을 쓰다가 아직 마치지 못했다. 그런 채로 여러 날이 흘러 그게 늘 마음에 있었다. 조만간 책과, 이날에 대한 글을 마무리해 올리려 한다.


건강검진을 했다. 다른 건 괜찮은데 공복 혈당 수치와 간 수치가 조금 높게 나왔다. 처음 있는 일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운동 시간을 늘리고 식사를 좀 잘 챙겨 봐야겠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 달 연기된 독서모임을 어제 드디어 마쳤다. 한병철의 <오늘날 혁명은 왜 불가능한가>와 김만권의 <외로움의 습격>을 읽었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오갔다. 특히 전자의 책에서 <괴로운 공허>라는 편이 기억에 남는다. 후자는 1, 2장이 특히 좋았다. 두 책 모두 결국은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극한의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았다. 집에 책이 있는 줄 알고 전날 다시 펼쳐 보려 찾았는데, 없었다. 앗, 어디로 갔지? 오래전에 읽어 내용이 희미했다. 점심 먹은 직후에 가서 초반에 약간 집중력이 흐트러졌지만 강렬하게 남은 씬들이 있었다. 특히 신구, 박근형 배우님의 열연이 돋보였고 그 에너지를 느끼며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젊은 날부터 현재까지 수십 년을 서 온 무대에 끝까지 서기로 다짐하는 건 어떤 마음일까. 문득 그 마음의 아주 작은 편린이라도 붙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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씸이 귀한 책들을 선물로 주었다. 책장 정리를 한다며 사진을 찍어 보냈는데 그중 다섯 권이 내 차지가 되었다. 오래 두고 보아 낡기는 했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기쁘다. 한 권 한 권 잘 읽어야지. <오 헨리 단편집>은 무려 세로 읽기 버전이다. 그밖에 <관촌수필>과 <원미동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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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보니 많은 일이 있었다. 잘 보냈다, 4월. 1월 1일 새해가 밝고 겨울에 대해 쓴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상반기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 그럼, 이제 곧 여름이려나. 쨍하게 푸른 더위와 함께 한 해의 절정으로 치달을 여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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