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밥 한 끼
10살 소녀 치히로는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를 하던 도중 부모님과 길을 잘못 들어 낯선 곳에 발을 들이게 된다. 거품 경제 시기 세워졌다가 폐허로 변한 옛 놀이 공원이었다.
냄새에 이끌려 화려한 음식들이 마법 같이 차려진 곳에 도착한다. 치히로의 아빠와 엄마는 주인 없는 식당에 앉아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겁이 난 치히로는 혼자서라도 돌아가겠다고 화려한 거리를 빠져나왔다가 소년 하쿠를 만난다. 하쿠는 해가 지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한다고 외친다.
식당가로 돌아가자 아빠와 엄마는 돼지가 되어있었다. 해는 이미 져가고 돌아가는 길은 물이 차올라 건널 수가 없다.
도시에 어둠이 깊어지자 센의 몸은 투명해지고 사라져 간다. 하쿠가 나타나 이 세계의 음식을 먹지 않으면 안 된다고 동그란 알맹이를 입으로 넣어준다. 괜찮다고, 먹어도 돼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주었을 때 삼킬 수가 있었다.
하쿠는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서지 못하는 치히로의 손을 붙잡고 신들을 손님으로 받는 목욕탕으로 데려간다. 가마를 지키는 할아버지에게 가서 할 수 있는 일을 부탁해야 한다. 일하지 않으면 이곳 주인 마녀 유바바가 동물로 만들어 버린다고.
결국 일을 찾지 못하고 유바바를 만나고, 치히로라는 이름 대신에 센이라는 이름을 받고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만난 하쿠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센은 또 다시 다리에 힘이 풀린다. 목욕탕 일을 가르쳐줄 린 역시 퉁명스럽더니 둘이 되어서야 다정스럽다. 센은 잠들 수가 없다.
날이 밝아오자 센을 다정히 불러주는 하쿠. 옥수수가 자라고 콩꽃이 피고 나비가 노래하는 배추밭 앞에 앉아서 하쿠는 센의 오랜 이름을 기억해 준다. 치히로.
하쿠는 치히로에게 주먹밥을 건네고 치히로는 커다란 눈물을 떨어뜨리며 주먹밥을 우걱우걱 먹는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미야자키 하야오, 2001
삶과 죽음 앞에서 사라져버리는 의미, 또는 존재가 겪어야만 하는 허기로 인한 무력감 같은 어떤 근원적이고 원시적인 어두운 감동이 울컥 밀려왔다.
나는 감히 하쿠와 치히로의 운명을 헤아리지도 전에, 단지 그것을 눈으로 목격했을 뿐임에도 존재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쿠가 건네는 주먹밥과 방울방울 떨어지는 치히로의 눈물 속에 담긴 절망이자 희망.
몇개월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친척들을 만난 곳은 경찰서 앞 백반집이었다.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밥을 먹고 힘을 내고 위로를 받고 난관을 헤쳐나가야 했다.
어둠이 사라져 가는 새벽녘 밥을 지으면 집안에 온기가 돌기 시작한다. 하루를 좀 더 다정하게 보낼 볼 요량으로 주먹밥을 만들어 도시락을 싼다. 주먹밥을 먹고 세상 밖을 버티는데 좀 더 힘을 실어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