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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i Dec 09. 2020

밖에 자극 아닌 스스로 풍요롭게 예술적 접근

예술가 가까이서 바라보기: Susan Hiller



<From the Freud Museum(프로이드 박물관으로 부터)>(1991–7)



<From the Freud Museum(프로이드 박물관으로 부터)> (1991–7)은 Susan Hiller(수잔 힐러)를 대표하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작가는 자신이 모은 물건을 아카이브용 박스에 담아 박물관 전시관에서처럼 반듯이 진열해 둔다. 관람객은 소위 ‘유물’이라 할 수 있는 물건과 때때로 확인되지 않는 출처의 물건들을 찬찬히 훑어보게 된다. 작품의 제목과 함께 언뜻 프로이트(Freud)로 대표되는 정신 분석의 실제 역사를 시사하는듯하지만 의도가 불확실해 보이는 몇몇 물건들 때문에 첫인상은 모호해지고, 이 암시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물건들을 자세히 들여다 볼수록 신성한 수원지가 적혀진 성수가 든 호리병과 (영국 전통 인형극 주인공) Punch & Judy의 소품이라던가 페티시적 도구, 점판 등 프로이드와 어떠한 연관성을 맺고 있는지 떠올려 보기가 좀처럼 어렵다. 인류학적 조사를 하고 있는 것일까? 관통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밝혀내기 위해 좀 더 시간을 들인다.


들여다볼수록 과학이 종교적 헌신, 주술, 여성 신체와 같은 사이비 과학으로 변질하여가는걸 확인한다. 작가는 아무래도 의도적으로 표면상 매우 이성적으로 보이는 구조에서 어긋나 보려는 시도를 하였으며, 그렇게 얻어낸 여백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 같다.









<From the Freud Museum>은 의도를 통해 가치가 평가되는 개념 미술적 구조 안에서 완성되었지만, 무엇보다 학문에 대한 풍자적 도착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이러한 점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봄에도 불구하고 (작가를 개입 시켜) 제멋대로의 환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주재하는 논리가 빠진 채 관람객을 매혹하고 추측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의 한계나 모호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섣불리 작품의 논지를 단정 짓기에 그곳에 전달되는 어떤 다른 메시지가 있을 것 같다. 그보다 더 통찰적인 시각으로 구성 원리이자 표시 수단인 시스템이나 구조를 바라보면 어떤 이해를 해볼 수 있을지 시간을 갖아 본다.









평론가 Brian Dillon은 테이트 브리튼에서 열린 Susan Hiller의 조망전(survey exhibition)에 대한 서문에서 “Hiller의 작품은 오래도록 허공 안에서 구체적인 현실을 드러내고, 설명과 형상을 불러일으키는 목격자의 능력에 의지하는 증명의 행위에 내재 된 역설을 연구해 왔다.”고 정리한다.

또한 Daniel Heller-Roazen의 “그것은 마치 사라져가는 언어를 지켜보려는 학자로부터 위기가 계속 모면 되는 것, 또는 기록하고 기억해내는 모든 시도를 저항하고 있는 사라져가는 언어에서 어떤 요소를 발견하는 것만 같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작품이 기록의 불완전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기록의 매체 중 하나이기도 한 예술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관람객은 Hiller의 작품에 대한 첫인상을 통해 지나간 것에 대한 기록이 확인되고 단정 지어짐으로써 어떻게 착오를 불러일으키는지 개념적으로 이해한다. 증명하려는 시도에 내재 된 역설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람 후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것은 그 시간 동안 작가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시각적 요소들에 대한 자신의 심미적 관찰의 잔재다. 예술이란 단지 증명의 역설과 같이 가치 있는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성을 잃고 사라지는 가치에 역시 옷을 입혀 관심과 애정을 쏟게하는 매체로서 역할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엇에 대한 표면적 이해를 넘어 깊이 있게 헤아리려는 시도란 예술적 접근으로 정의 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적 접근을 통해 한 문제를 다측적으로 다가가려는 시도는 삶을 밖으로 부터의 자극이 아니라 스스로 풍요롭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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