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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욱 May 16. 2024

삼국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27

정범조, 「閒居無事 閱歷代史紀 凡關係道學倫常可爲法戒者 輒用韻語論述 得絶句

27. 순욱은 조조의 실체를 알아보지 못했나

奸䧺機畧乍陽陰(간웅기략사양음)   간웅의 모략이 갑자기 바뀌었으니

天下皆知簒逆心(천하개지찬역심)   천하 사람 모두다 찬역의 맘 알았다네.

九錫受時方覺悟(구석수시방각오)   구석을 받을 때에 비로소 깨달았으니

誰言文若智謀深(수언문약지모심)   누가 순욱의 지모가 깊다 말하리.

정범조, 「閒居無事 閱歷代史紀 凡關係道學倫常可爲法戒者 輒用韻語論述 得絶句三十有三篇 觀者恕其猥濫也」, ‘위태조(魏太祖)’     


[평설]

순욱은 말 그대로 깔끔한 사람이었다.『양양기(襄陽記)』에 보면 “순령군(荀令君, 순욱)이 앉은 자리에서 사흘 동안 향기가 났다”라고 했다. 이런 성품은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순욱은 동탁이 집권하자 주저 없이 관직을 버렸다. 그가 다음으로 선택한 사람은 원소였다. 그러나 원소가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자 조조에게 귀의하기로 결단 내렸다. 그 뒤 조조의 여러 책사 중에 순욱은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선보였다.    

203년 조조는 찬탈의 마음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조조는 위공(魏公)의 지위를 욕심내어 구석(九錫)을 받으려고 하였다. 순욱은 여기에 반대했고 조조와의 사이는 틀어지게 된다. 조조는 패업의 완성을 꿈꾸었지만, 순욱은 한나라 황실의 부흥을 원했다.

조조에게 순욱은 항상 장량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조조는 결정적인 순간에 순욱이 자신을 응원하기는커녕 제지하고 나섰으니 섭섭했을 것이고, 순욱은 자신이 믿었던 조조가 야심을 드러내니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모든 인간관계는 유효기간이 있다. 그 둘의 관계도 이렇게 종언(終焉)을 고했다. 이러한 사실을『삼국지연의』에서는 극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조조가 순욱에게 빈 찬합을 보내고 순욱은 조조의 뜻을 간파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조조가 찬역의 마음을 품은 것은 구석(九錫)을 받을 때보다 훨씬 이전이었다. 그런데도 순욱은 조조가 구석을 받을 때에야 찬역의 마음을 겨우 깨달았으니, 순욱의 지모(智謀)가 깊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이처럼 정범조는 순욱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순욱 같은 사람이 조조의 야심을 몰랐을 리가 없다. 혹시 순욱은 그 이전에 그러한 기미를 감지했지만, 진실을 확인하기가 두려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석]

사양음(乍陽陰)은 조식(曹植)의 「낙신부(洛神賦)」에 “神光離合, 乍陰乍陽.”이라는 용례가 있는데, 빛이 갑자기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는 뜻이다. 여기에서는 “갑자기 바뀌다” 정도의 의미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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