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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욱 Oct 13. 2024

초한(楚漢)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70

이제현, 「진승(陳勝)」

70. 약속을 저버린 진승

甕牖繩樞去故園(옹유승추거고원)   가난한 처지로다 고향을 떠나서는 

魚書狐火起中原(어서호화기중원)   기발한 계략 갖고 중원에 우뚝 섰네. 

只應燕雀譏鴻鵠(지응연작기홍곡)   다만 응당 소인이 대인을 나무랐으니 

一去都忘壟上言(일거도망롱상언)   한 번 떠나 했던 약속 모조리 잊었다네.

이제현, 「진승(陳勝)」    

 

[평설]

이 시는 중국 진나라 말기의 농민 지도자 진승(陳勝)을 다루고 있다. 진승은 미천한 출신으로 한때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으나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1구에서 ‘옹유승추(甕牖繩樞)’는 깨진 항아리로 창문을 만들고 새끼로 지도리를 맨다는 뜻으로 가난한 생활을 비유한 말이다. 그는 낮은 신분에 가난한 처지였지만 큰 꿈을 품고 세상에 나갔다. 2구에서 ‘어서호화(魚書狐火)’는 진승(陳勝)이 그물에 걸린 고기 배 속에 “진승이 왕이 된다.[陳勝王]”는 글을 써넣어 소문이 나게 하였으며, 또 오광(吳廣)은 머물러 있는 총사(叢祠)에 불을 지르고 여우 울음소리를 내면서 “진승이 왕이 된다.”라고 외치게 한 것을 말한다. 이러한 두 가지 기발한 전략으로 민심을 얻고서 봉기했다. 

3~4구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숨겨져 있다. 진승(陳勝)이 젊을 때 어떤 사람과 품팔이를 하면서 밭두둑에 앉아 “우리가 부귀해지거든 서로 잊지 말자.” 하니 그 사람이 “품팔이하는 주제에 무슨 출세를 하느냐.”고 하자, 진승이 탄식하면서 “제비나 참새가 어떻게 하늘 높이 나는 기러기의 뜻을 알겠는가.”라 하였다. 뒤에 진승은 그 약속을 저버렸다. 

진승은 가난한 출신으로 시작하여 기발한 전략으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소인들의 비웃음을 뒤로 하고 끝내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진승 또한 성공 뒤에 달라졌다. 권력과 지위를 얻은 뒤에 과거의 약속을 저버리는 진승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욕망의 위험성을 함께 말하고 있다. 이처럼 개혁이 부패로 이어지는 지름길은 초심을 잃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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