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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욱 Oct 13. 2024

삼국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29

정조, 「영사(詠史)」 9수 중 7번째 시, ‘제갈공명(諸葛孔明)’

29. 하늘에 달렸을 뿐

春睡矇矇孰辨眞(춘수몽몽숙변진)   봄잠에 몽롱하니 누가 생시와 꿈 구별할까. 

枕邊時墮臥龍巾(침변시타와용건)   베갯 머리에 때때로 와룡의 건 떨어졌네. 

終然一出陽秋義(종연일출양추의)   마침내 한번 떨쳐 나와 춘추 의리 세웠으니 

成敗唯天不在人(성패유천부재인)   성패는 하늘에 달렸을 뿐 사람에게 있지 않네. 

정조, 「영사(詠史)」 9수 중 7번째 시, ‘제갈공명(諸葛孔明)’     


[평설]

1, 2구에서는 제갈량이 융중(隆中)에 은거하며 봄날 잠에 빠져 있던 시절을 말한다. '와룡'이란 별칭이 암시하듯 그의 잠재된 능력과 대의에 대한 열망은 봄날 잠 속에서 길러지고 있었다. 제갈량의 시에 “큰 꿈을 누가 먼저 깨었는가, 평소에 나 자신이 스스로 알지. 초당의 봄 잠이 넉넉하니, 창문 밖에 햇볕이 더디고 더디네.[大夢誰先覺?平生我自知. 草堂春睡足,窓外日遲遲.]”라고 하였다. 결국 몽롱한 봄 잠 속에서도 끝내 와룡의 기상만은 잃지 않았다. 3구는 제갈량에 세상에 나와서 유비를 도와 춘추의 의리를 실천하게 된 것을 말한다. 4구는 제갈량이 사마의(司馬懿)의 군대를 호로곡(胡蘆谷)으로 유인하고 화공(火攻)으로 공격하였다. 승리를 눈앞에 둔 순간에 갑자기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려 실패하자, “일을 도모함은 사람에 달려 있으나 성공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억지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謀事在人, 成事在天, 不可强也.]”라고 탄식하였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 하더라도 성패는 천명에 달려 있음을 말한 것이다. 이 시는 제갈량의 생애를 은일과 출사, 꿈과 현실, 개인의 능력과 운명의 장난을 통해 압축적으로 제시했다. 아울러 인간사의 모순과 영웅의 숙명도 잘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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