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동(李瓊仝), 「한신(韓信)」
77. 끝내 없어진 밥 한 그릇
少年胯下任譏訶 어려선 가랑이 밑 맘껏 조롱케 하더니만
晩歲還羞噲伍何 늙어선 번쾌와 같은 지위 어째서 부끄러 했나
豈是封侯無一飯 어찌 제후 봉해져도 밥 한 그릇 없었던가.
平生涯分已踰多 평생의 분수 이미 너무도 넘쳤을 뿐.
이경동(李瓊仝), 「한신(韓信)」
[평설]
이 시는 한신의 인생이 보여준 모순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어릴 때 회음(淮陰)의 백정 소년이 한신을 겁쟁이라 하며 자신을 칼로 찌르든지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라고 하였을 때 한신은 치욕을 견디고 가랑이 밑으로 기어갔다. 늙어서 지위가 강등되어 회음후(淮陰侯)로 있을 때 하루는 번쾌의 집에 들렀다가 문을 나서면서 “내가 번쾌 같은 자와 같은 지위가 될 줄은 몰랐다.” 하였다. 1,2구는 어려서는 견디기 힘든 모욕도 잘 참아내었다가, 늙어서는 교만하기 짝이 없게 변한 사실을 말한다.
젊어서 밥 한 그릇도 먹을 처지가 못 되었을 때 빨래하는 아낙이 밥을 챙겨주었다. 그랬는데 결국은 제후에 봉해졌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으니 그것을 한 그릇 밥도 없었다고 말한 것이다. 시인은 한신의 비극적 최후를 슬퍼하기보다는 죽기 전에 누렸던 영예가 그의 분수에 넘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신은 젊어서 일견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권력을 얻게 되자 숨겨져 있던 교만한 태도가 드러나서 그의 최후를 앞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