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환, 「張子房」
76. 조정에 다시 나가지 않으리
殲秦滅楚報君讐 진, 초를 섬멸하여 군주 원수 갚았으니
了債人間萬事休 세상의 빚 다 갚아 온갖 일 끝났도다.
從僊只爲身家計 신선 따름 다만 자신 위한 계책 삼았으니
肯復趨朝漢糓求 어찌 다시 조정 나가 한나라 녹 구하겠나.
강정환, 「張子房」
[평설]
이 시는 장량(張良)의 처세를 노래한 작품이다. 그는 진나라에 대한 복수와 초나라 항우 제거를 꿈꾸었다. 그러다가 진나라는 망했고 항우는 세상을 뜨면서 세상에 진 부채는 전부 다 청산된 셈이다. 이는 단순한 과업의 완수가 아닌, 일종의 역사적 소명을 다했음을 의미한다.
천하가 평정된 후 장량은 신선 술을 배운다며 훌쩍 벼슬을 버리고 세상을 떠났다. 표면적으로는 신선을 따르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생존을 위한 치밀한 전략이었다. 장량은 떠날 때 떠나서 목숨을 부지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떠날 때를 놓쳐서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 4구는 관직에 대한 단순한 거부가 아닌 관직의 위험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도 담고 있다.
이 시는 장량이 단순히 공성이퇴(功成而退), 곧 공을 이루면 떠났다는 사실을 칭송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가 은거를 선택한 것이 정치적 예지에서 비롯된 점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세상에 언제 나갔다가 세상에서 언제 돌아올 것인가? 나가지 않을 때 나가고 돌아와야 할 때 돌아오지 않으면 패가망신하기에 십상이다. 장량은 세상에서 할 일을 정확히 파악했다가 그 일을 완수한 뒤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세상에 미련 없이 떠났다. 이처럼 때를 알고 행동하는 절묘한 처세야말로 그의 진정한 뛰어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