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곡, 「영사(詠史」, ‘유수구(濡須口)’
64. 조조와 손권의 대결
春水方生宜速去(춘수방생의속거) 봄물이 불어나니 어서 빨리 떠나시오.
曹公且死我方休(조공차사아방휴) 조공이 죽어야만 이 몸도 쉴 테지요.
景升兒子眞豚犬(경승아자진돈견) 유표의 자식들은 정녕 돼지와 개 같으니
生子當如孫仲謀(생자당여손중모) 아들을 낳으려면 손권과 같아야 하리.
이곡, 「영사(詠史」, ‘유수구(濡須口)’
[평설]
이 시는 유수구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조조가 유수구를 침공하여 손권과 한 달 넘게 대치했다. 하지만 조조가 손권의 군대를 보고 그 질서정연함에 감탄하여 물러갔다. 이때 조조는 “자식을 가지려면 손권 정도는 되어야지. 유표의 아들들은 개나 돼지 같다”라는 말을 남겼다. 한편 손권은 조조에게 글을 보내서 “봄물이 불어나니 공은 빨리 떠나시오.[春水方生公宜速去]”라고 보내면서, 별지(別紙)에 “그대가 죽지 않으면 나도 편안할 수가 없소.[足下不死 孤不得安]”라고 하였다. 《삼국지》〈오서(吳書) 오주전(吳主傳)〉에 나오는 일화이다.
1, 2구는 손권이 조조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인용했다. 표면적으로는 봄날이 다가오니 물러가라는 점잖은 충고다. 하지만 실은 자신한테 죽기 전에 순순히 물러가라는 노골적인 협박이다. 별지에 적은 “그대가 죽지 않으면 나도 편할 수가 없소”는 말에서 손권의 굳은 의지가 엿보인다.
3, 4구는 조조가 손권의 군대를 보고 한 말을 인용했다. 유표의 아들인 유기와 유종은 변변치 않았던 것과는 달리, 손권은 뛰어난 자질과 불굴의 결기를 보여주었다. 조조는 이를 보고 아들은 손권 같아야 한다며 깊이 감탄했다.
시인은 유수구 전투에서 손권의 영웅적 면모와 이를 인정한 조조의 혜안을 대비하여 보여주었다. 아버지의 위업을 계승하지 못한 유표의 아들들과는 달리, 손권은 적수인 조조마저 감탄할 만한 인물이었다. 시인은 이러한 대비를 통해 진정한 영웅의 자질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