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Oct 09. 2024

읽는 것과 쓰는 것은 모두 놀라운 치료제이다


대학생 때 피아노를 전공하는 후배가 있었다.

피아노를 전공해서 음악가가 된다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수십 명이 어우러진 오케스트라단에도 피아노 연주자는 오직 한 명이다.

피아노가 두 대 세 대 놓인 것을 본 적이 없다.

이것만 보더라도 피아노 전공자들이 오케스트라단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학교 선생님 자리도 많지 않았다.

한 학교에 국어 선생님은 몇 명이나 되었지만 음악 선생님은 고작 한두 명이었다.

그래서 후배에게 피아노를 전공해서 무슨 일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후배가 음악치료사가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음악치료사?

나로서는 굉장히 생소한 말이었다.

음악으로 사람을 치료한다는 독특한 일이었다.

그 후에 어느 책에서 미술치료사라는 말을 접하게 되었다.

좋은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치료된다고 했다.

이후 이러저러한 치료사들이 많이 생겼다.




지금 시대는 치료 행위를 의사들이 하는 특별한 일로 생각한다.

하지만 긴 역사 속에서 치료 행위는 누구나 행해 왔던 일이다.

어렸을 적에 체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아버지께서 바늘로 내 손가락을 따 주셨다.

그때는 바늘이 무서워서 울고불고했는데 신기하게도 손을 딴 후에는 속이 편해졌다.

배탈이 났을 때 어머니는 내 배를 맨손으로 쓰다듬어 주셨는데 그러면 나았다.

열이 나면 머리에 물수건을 얹어주셨는데 그러면 신기하게도 열이 내렸다.

이빨이 흔들리면 실을 묶어서 순식간에 잡아당겼는데 이빨이 쏙 빠졌다.

내 이빨 중에서 치과에 가서 뺀 것은 하나도 없다.

아버지 어머니가 나의 치과 선생이었다.

병원을 구경하기 어려운 곳이어서 그랬는지 웬만한 질병은 어른들이 알려주는 방법으로 대부분 고칠 수 있었다.

어른들은 자연에서 몸에 좋은 풀과 과일을 발견했고 그것들을 잘 사용해서 치료의 달인들이 되었다.




속에 맴돌고 있는 말들을 입 밖으로 끄집어내서 마음의 질병을 고치기도 하고, 입을 꾹 다문 채 묵언수행을 하면서 치료받는 사람도 있다.

좋은 영화나 연극을 보면서 배우들과 함께 웃고 울고 하는 사이에 몸과 마음이 낫는 사람도 있고, 우연히 접한 좋은 시나 소설, 산문을 통해서 아픔이 치유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나처럼 답답한 마음이 들면 그냥 걷는 사람도 있다.

한 시간 두 시간 걷는 동안에 속에 차올랐던 울화가 가스처럼 밖으로 새 나가고 맑은 공기가 안으로 들어오는 경험을 한다.

처음에는 주절주절 욕도 했다가 짜증도 냈다가 하지만 나중에는 차분해지고 ‘그럴 수도 있지’하는 마음으로 돌아온다.

휴가철에 지리산 종주를 감행한 이유는 내 몸과 마음이 치유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리산뿐만 아니라 지난여름에는 설악산, 소백산, 속리산, 청계산, 관악산 등을 걸으면 많이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은 속상한 일이 있으면 글을 썼다고 한다.

특히 자신을 열받게 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면서 열을 식혔다고 한다.

편지 안에 온갖 분노를 다 쏟아내었다.

그런데 독특한 점은 다 쓴 편지를 보내지 않고 그냥 불에 태워버렸다고 한다.

그 모습이 너무 의아해서 한 참모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링컨이 다음과 같은 명언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편지를 쓰고 있노라면 내 안에 치솟았던 분노가 싹 사라집니다.

편지를 쓰면서 다 쏟아내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편지를 상대방에게 보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갈등이 생깁니다.

이미 내 마음은 치유되었는데 괜히 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요.

그래서 다 쓴 편지를 보내지 않고 불태워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링컨은 글쓰기를 통해서 마음을 치유받았다.

읽는 것과 쓰는 것은 모두 우리를 고쳐주는 놀라운 치료제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스토리가 나를 살포시 다그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