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Dec 20. 2024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한다는 말도 더 이상 미루지 말자


톨스토이의 단편 중에 <코르네이 바실리예프>라는 작품이 있다. 

군복무를 마치고 장사를 시작한 코르네이는 하는 일마다 잘되어 모스크바에까지 사업이 뻗어 나갔다. 

그에게는 어머니와 사랑스러운 아내 그리고 아들과 딸이 있었다. 

단란한 가정이었다. 

사업차 모스크바에 갔다가 오랜만에 돌아오던 코르네이는 이웃 사람인 쿠지마가 모는 썰매를 타게 되었다. 

그런데 쿠지마는 코르네이 같은 부자를 굉장히 싫어했다. 

잠시 주막에 들른 코르네이는 썰매꾼인 쿠지마에게도 술을 한잔 권했다. 

그러면서 마을에 대한 소식들을 들려달라고 하였다. 

쿠지마는 마을에서 있었던 온갖 소문들을 들려주었는데 그중에는 코르네이의 아내 마르파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마르파가 친정 동네 출신인 머슴을 하나 들였는데 그 둘이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소문이었다. 

쿠지마의 이야기를 들은 코르네이는 속에서 분노의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코르네이가 집에 도착하자 그의 어머니와 아들과 딸 그리고 부인 마르파가 반가이 맞이했다. 

하지만 코르네이의 마음은 불편했다. 

그는 다짜고짜 부인에게 머슴과 놀아나고 있냐고 추궁하였다. 

마르파는 그게 무슨 말이냐며 어이없어했는데 코르네이는 부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부인에게 더 큰 소리로 야단을 치고 손을 들어 때리기까지 했다. 

부모의 싸움에 놀란 어린 딸이 어머니에게 다가오자 코르네이는 그 어린 딸을 내동댕이치기까지 했다. 

그 여파로 그의 딸은 팔이 부러져 버렸다. 

코르네이는 그 집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생각해서 얼마간의 돈을 챙겨 집을 나가버렸다. 

자기 딴에는 혼자서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생은 만만하지 않았다. 

이전에는 장사가 잘되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후로는 손을 대는 일마다 실패만 했다. 

결국 빈털터리가 된 코르네이는 남의 집 머슴살이까지 하게 되었다.




17년의 시간이 지나 코르네이는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 아내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병약한 몸을 추스르며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온 코르네이는 아내에게 실컷 욕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17년 전의 아내는 온데간데없고 집에는 웬 노파만 하나 있었다. 

그 순간 코르네이의 분노심은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다. 

아내에 대한 측은한 마음마저 들었다. 

하지만 아내는 코르네이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남편을 문전박대하고 쫓아버렸다. 

코르네이는 이웃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지만 이미 온몸의 기력이 다 빠져나가 버렸다. 

한편 코르네이의 부인은 자신이 남편에게 너무 매정하게 대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용서를 구하려고 왔는데 자기가 남편을 내쫓은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급히 남편이 묵는 곳으로 갔다. 

그러나 이미 코르네이는 숨을 거둔 상태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코르네이와 마르파 부부가 겪은 일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뜬소문을 믿어 버리고, 사실 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채 싸우고, 분노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여 긴 세월 동안 복수의 칼을 간다. 

미안하다고 하면 다 해결될 텐데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한다. 

괜찮다며 용서한다고 하면 끝나는 일인데 괜찮다는 말, 용서한다는 말이 안 나온다. 

용서를 구하는 일에도 때가 있고 용서를 베푸는 일에도 때가 있는데 우리는 그때를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살아간다. 

아차 하고 달려가 보면 이미 때를 놓쳤다는 걸 알 수 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그때를 놓치면 영영 후회만 남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미안한 일이 있었는가?

오랫동안 용서해 주지 않은 날이 있었는가?

더 이상 미룰 일이 뭐 있겠나?

생각난 김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자. 

용서한다고 말을 하자. 

지나고 나면 별것도 아닌데 너무 오랜 시간 묵혀 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