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사는 것
이 세상에는 생각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사실 이것을 깨닫게 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대학을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또 특히 어떤 것에 감동을 느끼는지 잘 몰랐다. 그저 흐르는 대로..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았달까.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는 그런대로 무탈하게 잘 지내왔고, 또 그런대로 그게 나쁘지많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때'보다는 무언가 깨닫게 된 '지금'에서 내가 체감하는 나의 삶의 질이 훨씬 풍부해졌다는 것이다. 요컨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스스로 아는 일은 굉장한 행복이다.
이 사진은 작년 여름, 종로의 어느 골목 모퉁이를 지나가다 찍은 사진이다. 종종 나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풍경들이 있다. 그리고 이 곳이 그러했다. 나는 옛 것을 참 좋아한다. 그 이유는 정확히 설명하기가 어렵다. 옛 것을 바라볼 때 나의 그 풍만한 느낌은 결코 형언하기가 쉽지 않다. 그저 옛 것에서 풍기는 향기가 너무 좋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종로나 동묘, 을지로 이 쪽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아주 옛 향기로 가득 차 있는 곳들이다. 그냥 걷기만 해도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옛 노래도 참 좋아한다. 최백호, 양희은, 김광석, 정미조, 이은하,, 등등.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재즈랑 옛 팝송도 좋아한다. 대니 정이나 쳇 베이커 같은. 요즘 내가 한창 듣는 노래는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 다. 아, 그러고 보니 김현식도 있다. 좋아하는 것에는 살짝 두서가 없다.
이렇듯 나는 종종 길거리를 거닐다 맘에 드는 한 곳을 발견하면 무조건 그 자리에 서서 핸드폰을 꺼내 든다. 그리고 마치 사진작가가 된 것 마냥 온 정신을 집중해서 연신 셔터를 누른다.
나의 이런 취향은 일상 속에서 특히 내게 큰 힘을 불어넣어준다. 살다 보면 너무나 바쁘게 흘러가버리는 시간 속에서 잠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래서 쉬자,라고 마음을 먹어보면 막상 어떻게 해야 '잘' 쉬는 것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아 약간에 혼란을 겪게 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애매한 휴식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사실 '쉰다'는 것에 대해 그리 깊게 생각을 하며 지내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쉬는 건 그냥 쉬는 거지,라고 간단하게 생각해 온 편이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조금씩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것들을 언제부터인가 나름대로 내 쉼 안에 적용시키기 시작했다.
동네 산책을 하거나 (물론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나는 가능한 한 음악을 항상 내 옆에 둔다. 그러나 가끔은 자연이 주는 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될 때도 있다) 컨디션이 좋다면 집 동네를 벗어나 조금 먼 곳을 다녀오는 식으로 말이다. 올 초에 두 어번 정도 남산엘 다녀왔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다. 드디어 나의 장소를 찾았다. 굉장히 짜릿했다. 아, 그리고 책을 좋아한다면 남산 도서관에 꼭 가보시길 추천드린다. 주변이 초록색으로 뒤덮여 있어 여유가 있다면 책을 읽다 가도 정말 좋을 것 같다.
지나가다가 사진을 찍고, 산책을 하고, 또 햇볕 아래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것은 내가 이전에 찾지 못했던 나의 휴식의 방식이 되었다. 지금은 이것이 너무나도 좋다.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그것의 일부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무엇보다 글을 쓰는 순간에는 나는 매우 행복하기 때문이다.
나는 형태가 큰 것만이 나의 행복을 온전히 채워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점점 깨달아가는 중이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행복.' 그것을 찾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막상 하고 보면 제일 크게 내 안에 남는다. 그리고 꽤나 오랫동안 나를 붙들어준다. 쇼핑을 좋아한다면 쇼핑을 하고, 여행을 좋아한다면 여행을 떠나고, 또 햇빛을 쬐며 음악을 듣는 것이 좋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온전히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그렇게 나만의 좋은 '쉼'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내가 나의 취향을 찾아가는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바뀌지 않을 수도 있겠고, 혹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새롭게 발견될 수도 있겠지만 바라옵건대, 그 안에 여전히 '내'가 놓여 있으면 좋겠다.
세상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 투성이다. 햇빛, 노을, 풀소리, 아이들 웃음소리, 바람, 나무들. 그리고 이 것들은 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귀한 것들이다. 공짜로 누릴 수 있는 이 아름다움이 내게는 좋은 '쉼'이 된다.
나만의 좋은 '쉼' 만들기. 그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