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인천발 타이베이행 비행기를 탔다
여행을 그리워한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해외여행은커녕 마음 편히 국내여행을 다녀온 게 언제인지도 까마득하다. 그동안 정말 철저한 거리 두기 생활을 하고 있었구나? 이런 생활로 미뤄 짐작해 보았을 때에 나의 코로나 블루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 8할 이상은 여행을 못 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번 주는 나를 위한 대리만족 랜선 여행을 준비해보았다. 나뿐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를 위한 랜선 여행이 되길 바라며 지금 바로 대만의 수도인 타이베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보자.
난리 났네, 난리 났어!
타이베이 송산 공항으로 출발한 이스타 항공기가 이륙한 지 7시간 만에 다시 김포공항으로 돌아왔다. 이게 뉴스 기사로만 접해본 '회항'이라는 건가 싶더라. 타이베이의 교량과 건물 심지어 자동차까지 생생하게 내 시야에 들어온 순간 비행기가 다시 하늘 높이 올라가더니 10여분이 지나서 서울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강풍으로 인해 착륙이 어렵다는 이유로. 기내식은커녕 간식도 제공되지 않는 저가항공 단거리 노선이라 친구와 나는 7시간이 넘도록 공복인 상태로 비행기를 탔고, 기름이 떨어져 제주도에 착륙해 주유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면세품 반납까지 마치고 8시간 만에 다시 돌아온 김포공항 도착층에서는 기나긴 설전만 오고 갔다. 항공권 취소와 익일 재탑승 이 두 가지의 선택지 외에는 아무런 대책도 보상도 없이 새벽 1시 반이 넘어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상천외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린 이토록 허무하게 여행을 취소할 수 없었기에 다음날 다시 비행기를 탔고 하루 늦게 대만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그렇게 타이베이는 나와 친구에게 애증의 도시가 되었다.
타이베이의 맛
'남들도 다 먹어서'가 아니라 대만에 가게 된다면 한 번쯤 먹어봐야 하는, 그리고 몇 번이고 또 먹을 의향이 있는 음식 3가지를 꼽아봤다.
우육면(뉴러우몐, 牛肉麵)
향신료가 두려운 사람도 도전해 볼 만한, 도전하지 않으면 후회할만한 타이베이의 대표적인 메뉴다. 현지인 맛집부터 이연복 셰프가 다녀가 한국에서 유명세를 얻은 집까지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후보가 다양했지만 일정인 전부 다 바뀌어버린 탓에 우리는 이스타 회항 사건으로 알게 된 언니들을 따라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는 우육면 가게에 갔다. 가게의 외관은 정말 허름했지만 실내는 정갈했고 부드럽고 푸짐한 고기, 깔끔하면서 진한 국물, 도톰하고 매끄러운 면발의 3박자가 조화로운 곳이었다.
만두(쟈오즈, 餃子)
딤섬, 물만두, 찐만두, 화덕만두 그 모양도 조리법도 전부 다르지만 하나같이 고유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중국 본토에서 만두를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타이베이만의 만두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될 만큼. 재료의 맛과 향은 풍부하지만 과하지 않아 부담 없는 만두라고나 할까? 샤오롱바오, 샤오마이, 물만두, 화덕만두까지 꽤 다양한 만두를 맛보았는데 메뉴판 속 한자 테러와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모든 만두를 실패 없이 맛있게 먹었다. 역시 미식의 도시는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구나!
망고빙수&버블티(쩐주나이차, 波霸奶茶)
망고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없어서 못 먹는 사람이라면 타이베이 여행은 절호의 기회다. 국내에서는 가격도 비싼 데다가 기껏 고른 망고가 맛없을까 싶어 선뜻 사 먹지 못하는 망고가 한가득 올라간 망고 빙수를 매일 즐길 수 있기 때문. 망고 빙수를 판매하는 가게마다 구성이나 모양새가 조금씩 다르지만 생망고 과육, 망고가 첨가된 부드러운 얼음, 망고 아이크스림 이 세 가지는 어느 가게에서 시켜도 기본값처럼 항상 포함되어 있다.
망고 빙수와 더불어 밀크티와 버블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천국 같은 이 도시에서는 저렴하고 맛있는 쩐주나이차도 놓쳐서는 안 된다. 1일 1 망고 빙수와 1 쩐주나이차가 필수인 도시다.
타이베이의 매력
야시장
스린, 라오허제, 닝샤, 공관 등 야시장의 도시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매일 밤 도시 곳곳에서 다양한 야시장이 열린다. 그중 내가 간 곳은 스린과 라오허제 야시장이었다. 두 곳 상상 이상의 규모를 자랑하는 데다가 절반 이상이 먹거리를 판매하는 가게라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포스트를 쓰면서 찾아보니 이 두 곳이 대만의 10대 야시장 중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야시장이라고 한다. 어쩐지 정말 너무 크고 화려하더라. 사진에 없는 지파이(닭고기를 넓게 튀겨 만든 음식)를 시작으로 후자오빙(화덕 벽에 구워낸 만두와 빵의 중간 느낌), 왕자치즈감자, 큐브 스테이크, 이름 모를 꼬치까지 먹어보고 싶은 음식은 전부 골라 먹었다. 아 취두부만 빼고! 끝나가는 하루의 끝에서 먹고 걷고 구경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야시장의 그리고 타이베이의 매력이다.
자연과 도심의 조화
타이베이 시내의 시먼딩, 융캉제라는 지역은 현지인과 전 세계에서 온 여행객들로 늘 붐빈다. 숙소를 시먼딩 지역에 있는 곳으로 선택한 것도 교통의 요지이자 주변에 수많은 상점이 가득해 도보 이동이 편리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먼딩의 거리의 상점 중에는 한국 화장품 브랜드도 종종 찾아볼 수 있어 명동과 닮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융캉제는 한국에도 있는 '딘타이펑'을 포함해 다양한 글로벌 체인점의 본점뿐 아니라 타이베이만의 색깔이 느껴지는 옷 가게, 서점, 소품 가게들이 골목 안에 가득 차있었다.
이런 서울 못지않은 빌딩 숲에서 벗나 택시를 타고 한 시간 남짓(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 30~40분 정도 걸렸을 거다) 달리면 산과 바다가 동시에 펼쳐진다. 일명 '예스허진지 투어'다. 코스에 따라 반나절 혹은 한나절 일정으로 바위, 산, 폭포 등 처음 보는 경관을 하루 안에 전부 만끽할 수 있다. 기이한 모양의 땅과 바위로 가득한 예류의 지질공원부터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배경지로 유명한 지우펀까지 전부!
뚜벅이여 어서 오라
돈을 모으면 여행을 가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인 사람이라 그동안 꽤 많은 나라의 대중교통을 이용해봤다. 지금 바로 떠오르는 미국, 영국, 태국, 프랑스, 일본 등과 비교했을 때 타이베이의 대중교통은 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다. 이용하기 편한데 시설은 깨끗하고 부담 없는 가격까지 갖췄으니 예산과 시간이 모두 빠듯한 뚜벅이 여행자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뚜벅이여 어서 오라 타이베이로!
지금은 여행을 준비하는 시기일 뿐이다. 랜선 여행으로 지난 여행을 이렇게 곱씹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