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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먹과 요가 Aug 04. 2024

우울의 페이스트리

우울의 파이 완성!


 발단은 엊그제 울린 카톡창이었다. 카톡- 지자체에서 주최하는 팸투어에 빈자리가 생겼다며 땜빵(밥도 주고 재워도 주고 관광까지 시켜주는) 1명을 급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선착순 1명! 가장 가까워 대략 기차로 한시간 반이면 도착이 가능하다는 유리함을 이용해 당장 손을 들었다. '즉흥여행의 묘미란 이거지!'라며 당장 기차표를 예매했다.


 다음 날, 필수용품만 챙긴 간단한 봇짐만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차에 올랐다. 곧 수 개월에 걸친 기나긴 세계여행을 떠날 친구를 배웅할 수 있겠다는 설렘도 함께 말이다. 꾸물꾸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긴 장마에 회색이 된 하늘도 설렘을 멈추진 못했다. 기차역에 도착해 1박 2일을 함께 할 약 20명의 인플루언서, 여행사 관계자들과 만났을 때도 즐거움에 들떴을지언정 기분이 그날의 하늘처럼 저기압은 아니었다.


 온도 약 34도, 습도 약 98%의 한증막같은 날씨에 축축한 습기를 내뿜는 나무와 숲으로 둘러쌓인 절을 꼬박 1시간동안 해설을 들으며 걸었을때도 괜찮았다. 옷은 이미 땀으로 젖어 등허리에 물먹인 창호지를 붙여놓은 것 같았지만 말이다. 해설사님의 설명은 새로운 시각이 돋보이고 유익했으며, 극세사 수술이 달린 옷을 입은 것 같이 생긴 이끼가 가득한 나무 기둥을 보는 것도 재밌었다.


 아마도 그 시점이었던 것 같다. 기분이란게 그렇지 않나. 순간의 감정처럼 짠-하고 갑작스럽게 찾아오질 않고 페이스트리처럼 얇디, 얇게, 한장, 한장 씩 차곡차곡 쌓인다. 첫 번 째 페이스트리는 이랬다. 평소에 묻고 싶은 것들이 가득했던, 곧 세계여행을 떠나는 멋진 삶을 살고 있는 친구에게 배웅인사를 전하는 것에 더해 인생의 갈림길과 선택에 대해 묻고 나누는 그런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잔뜩 젖은 몸을 개운하게 씻어내면서 마음 속으로는 이 친구와 이렇고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야지-하고 기대를 했던 것도 같다. 방으로 돌아왔을때 아무도 없는 텅빈 공간을 보고서 약간의 허탈감을 느꼈다. 꽤 오랜 시간동안 친구를 기다리다, 산책이나 갔다 올까하며 밖을 나섰다가 갑작스런 비에 스무 걸음도 가질 못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을 때 내 가슴 위로 확실히 쌓였던 것 같다. 첫 번째 페이스트리가.


 두 번 째 페이스트리는 이튿날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만큼 실망도 없었던 몇 개의 투어 프로그램들을 거치고 점심 시간이 됐을 때였다. 공교롭게도 나와는 성별도, 나이대도 다른 여행사 관계자인 3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식사 자리에 앉게 되었다. 나는 그 식사자리에서 필수불가결한 말을 제외한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음식만을 입으로 가져다 날랐고, 심지어 메두사를 만난 듯이 눈도 마주치지 않고 식사를 빠르게 마친 후에 화장실을 핑계로 일찍 자리를 떴다. 이제까지 한마디도 말을 나누어보지 않은 사이었다는 것이, 그들이 나누던 대화가 내가 알지 못하는 울릉도의 어떤 패키지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이 이유였을까? 아니었다. 나는 필요하다면 누구에게라도 어떤 주제로든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마지막 페이스트리는 이번 투어를 소개해 준 친구의 또 다른 소개였다. 지금 여행을 하고 있는 지역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한 이야기였다. 상당히 나의 편의를 살펴보아주는 고마운 제안이었다. 하지만 친구에게 제안해준 것에 대해 크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제안에 대해 생각해보겠다고 긍정적인 답변을 하고 나서 내 마음은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불편해졌다. 왜였을까? 고마운 일자리를 제안 받은 것이, 왜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을까?


 

 첫 번 째 페이스트리는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뿌리 깊은 거부에 대한 두려움이 원인이었다. 친구가 돌아오지 않는 시간 동안 그 이유를 궁금해하면서 '나와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한가?', '투어를 함께 했던 다른 친구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그 곳으로 간 것이려나?'라는 추측들이 머리에 떠올랐었다. 그러는 동안 내 마음은 잠시 잠깐동안 버림받았다고 느꼈나 보다. 나의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우울의 구름을 몰고 왔던 거다.


 두 번 째 페이스트리의 원인은 직장 내 괴롭힘의 기억이었다. 한창 스스로를 어떻게 먹여살려야 하나-라는 고민과 걱정에 빠져있던 시기였다. 그러다 겨우 얻은 생존의 기회인 첫 직장에 모든 에너지를 일에 쏟았었다. 일에 대한 보람을 느낄 새도 없이 이 회사를 떠나면 더 이상 업계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해주겠다는 협박에, 학력에 대한 인신공격, 계약서의 일방적인 파기 등이 이어졌다. 견디다 못해 이직한 두 번 째 회사에서는 직장 내 따돌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처음 알았다. 소문으로만 나를 아는, 내가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이 보내는 경멸과 혐오의 눈빛이 얼마나 서슬퍼렇고 무서운 것인지. 그 직장이 여행업이었고, 식사를 함께했던 사람들도 여행업계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이었다. 난 그저 그 때 직장 내 괴롭힘을 저질렀던 사람들의 귀에 내 소식이 단 한 톨이라도 전해지지 않기를 바랬다. 그 때 한창 구설수에 올랐던 걔 알지? 글쎄 걔가 어디서 뭘 하고 있다더라-라는 식의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위축되었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다.


 세 번 째 페이스트리는 내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지 못한 벌로 찾아온 우울이었다. 친구의 제안이 고마운 것과는 별개로, 나는 그 일이 썩 내키지 않았다. 내가 쌓고 싶어하는 커리어의 방향과는 다른 일이었고, 일 자체가 흥미로워서 그 자체로 보상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나는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거였다. 하지만 마치 무척이나 하고 싶은 양, 긍정적인 반응과 행동을 보였다는 점. 그 점이 나를 우울하게 했다. 내가 원치 않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고 표현할 자유를 박탈당했다고 느꼈던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사람은 과거에 살면 우울하고, 미래에 살면 불안하다고 한다. 이틀 전의 나와 어제의 나는 과거에 살았던 것이다. 과거의 아픔이 건드려졌을때에 나는 세 번의 우울의 페이스트리를 쌓았고, 그것들이 겹겹이 겹쳐져 자각을 할 만큼 큰 우울의 파이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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