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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경시 준비 해야겠어

아이가 스스로 찾은 용기

by 스공더공


오후 네 시쯤, 둘째에게서 전화가 왔다. 하교길에서 걸어온 그 전화 한 통이 내 하루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엄마, 나 오늘 많이 생각해봤어. 내 미래에 대해서 말이야.” 아이의 목소리에는 평소와 다른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진지함과 결의, 그리고 조금의 설렘까지. “공부계획이랑 미래계획을 다시 세워야겠어. 집에 가서 엄마랑 같이 이야기해보자.”하며 전화를 종료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아이의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그동안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스스로 만족할 수 없다는 아이가, 재계획을 스스로 생각해냈다는 것이 너무 감동스럽고 기뻤다.


무엇보다 누군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필요를 느껴 변화를 결심했다는 점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집에 도착한 아이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스스로 부족한 부분들을 차근차근 적어 내려갔다.


수학의 어떤 단원이 약한지, 어떤 개념이 헷갈리는지, 문제 풀이 속도는 어느 정도인지까지. 그리고 그 옆에는 언제 어떻게 그 부족함을 채울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적혀 있었다.


“엄마, 그리고 나 시험에 응시해보고 싶어. 경시대회 말이야.”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그동안 경시대회는 우리에게는 높고 험한 벽 같은 존재였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경시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절대 억지로 보내거나 시키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원한다면 언제든 도와주겠지만, 아이는 늘 부담스러워했고 피하고 싶어 했다. 넘지 못할 벽처럼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아이는 그 벽 앞에서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쳐보겠다는 각오를 보여주었다. 이런 결심은 등 떠밀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내가 스스로 해보고 싶다고 말하는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아이는 바로 접수를 했다.

그리고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네가 도전하는 마음 자체가 너무 기특해. 엄마는 정말 자랑스러워.”


기다린 보람이었다. 그동안 나는 늘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기를 바랐다.

부모가 억지로 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원하고 선택한 길을 걸어가야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조급해도 기다렸고, 아이가 언제든 도전할 수 있도록 환경만 만들어 두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었다.


“엄마는 언제나 널 응원하고 기다린다.”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이,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고 믿어준다는 마음을 계속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문제집을 주문하면서 마음이 벅찼다.

이제 한 달 정도 남은 시간 동안 아이는 어떤 모습으로 나를 감동시킬까? 물론 점수를 잘 받으면 좋겠지만,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


아이가 두려움을 이겨내고 도전하는 것, 시험장에서 문제를 풀며 그 분위기에 적응하려고 하는 것, 그 모든 과정 자체가 너무 감사하고 대견하다. 아이가 시험이 긴장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기했다.


아이는 이제 알고 있는 것 같다. 부족함이란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성장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 하루, 내 아이가 한 뼘 더 자란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하다. 앞으로 어떤 결과가 나와도 이미 충분히 자랑스럽다.


스스로 선택하고 도전하는 용기를 낸 것만으로도.


아이는 때가 되면 하고 싶은건 다 한다.

그 말이 맞음을 오늘 확인한것 같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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